슬로우 비디오. 영화애니이야기

차태현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감독의 전작, 헬로우 고스트를 너무 잘 봤다.
그래서 감독이 또 차태현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믿고 봤다.
그리고 나는 매우 좋았다.

시력이 너무 좋아서 동체시력이 끝내준다는 주인공의 특수성은 슈퍼 히어로들의 그것처럼 주인공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주진 않았다.
그리고 그 능력으로 기발한 활약을 하는 것은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처음 한 번으로 끝이다.
주인공의 특수한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주인공과 주변사람 자체를 내세워서 아주 잔잔하고 훈훈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헬로우 고스트 때도 그랬지만, 이야기를 참 잔잔하고 무덤덤하게 끌어간다. 그래서 자칫 지루하고 아무런 기복 없는 시시한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다.
주인공은 전작에서도, 이번에도 대인관계에 아주 서툰 외로운 사람이고, 귀신을 본다거나 동체시력이 아주 좋다는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도 다이나믹하고 기똥찬 활약을 보이진 않고 그냥 그 능력을 허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잔잔한 이야기의 끝에는 따뜻한 무언가가 있다.
그 잔잔함으로, 별것 아닌 것 같던 말과 행동으로 외로운 사람을 한껏 보듬어주고 위로해준다.
영화를 보는 사람도 무덤덤하게 이야기에 끌려가다 갑자기 훅 하고 치고 들어오는 무언가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스트레이트나 어퍼컷이 아닌 잽으로 사람을 넉다운 시킨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고 이 영화를 장르가 마냥 코미디인 건 아니다.


감독의 전작인 헬로우 고스트와는 겹치는 키워드가 더러 있다.
외로움, 고독, 가려진 슬픔, 향수, 그리고 바다.

외롭고 힘든 사람들이 본의든, 타의든 자꾸만 바다를 찾는다.
역시 사람은 힘들 때 바다를 보며 기운을 얻어야 한다. 나도 부산에 있을 땐 이따금씩 바다를 보며 마음의 위로를 받곤 했다.

그리고 지난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소품이나 음악이 향수를 자극한다.
감독이 사람이 힘들 때 어디로 도피하고 싶은지 잘 파악하는, 외로움을 잘 아는 사람인 것 같다.
다소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를 그리면서도 그런 요소들이 영화를 한결 밝게 만들어준다.

외로운 사람의 외로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외로운 사람들이 흔히 할 수 있는 말, 그리고 듣고 싶은 말들로 직접적인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주인공의 독백을 들으면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맞아 맞아, 나도 그랬었지' 하고 공감을 하게 된다.

영화 내내 그림이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한 획, 한 획 정성스럽게 그려진 그림들이 화면을 예쁘게 메운다.
사실 그림들을 보면서 '와~ 예쁘다, 잘그렸다' 라는 생각 보다는 '저걸 언제 다 그려...'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거의 동네를 다 그린 듯한 광활한 지도와, 첫사랑을 보며 영감을 얻어서 그린 따뜻하고 아름다운 그림들이 아주 보기 좋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작품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영화 말미의 전시회장에서 선보이는 그림들은 영화속 아름다웠던 장면들을 함축적으로 모아놓아, 다시 한번 그 모습들을 되새기게 한다.

이야기는 헬로우 고스트보다 좋았지만, 캐릭터는 헬로우 고스트 때보다 약해진 느낌이다.
아주 뚜렷한 개성을 가진 전작의 고스트들에 비해, 이번 작품의 이웃들은 다들 나쁘진 않은데 이렇다 할 개성이 부족하다. 그냥 두루뭉술 이야기에 얹혀 가는 느낌.
너무 주인공에 의지해서 끌려가는 기분이라 살짝 아쉽다.

남상미는 볼 수록 매력적이다.
산발 같은 사자머리를 하고 나왔을 땐 저게 뭐야?! 라며 놀랐는데, 그의 몸짓, 손짓, 웃음이 정말 매력적이고 사랑스럽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은채 손을 높이 들고 좌우로 흔들며 깡총깡총 뛰던 그 몸짓은 최고였다.

조금은 어정쩡한 이웃중에서 그나마 이미 얼굴만으로도 개성만점인 고창석이 헬로우 고스트에 이어 이번에도 함께 했다.
극중에 고창석의 캐리커쳐가 나오는데, 정말 닮아서 그림으로도 빵 터진다.
정말 최고의 씬 스틸러다.


중반까지는 나레이션에 이끌려 진행되는 지나치게 잔잔한 이야기 때문에 자칫 '감독을 너무 믿었나?' 하는 의심을 하게도 되지만, 끝까지 보고나면 역시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외로움을 부쩍 많이 타서인지 감독의 살살 달래주는 어루만짐에 울컥 하고 올라온다.
그리고 옆자리의 아가씨는 눈시울을 붉히다 이내 손으로 눈물을 훔친다.

두서 없이 생각나는대로 적었지만, 썩 괜찮은 영화였다.
가끔씩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에 꺼내보면 참 좋은 위로가 될 것 같은 영화다.
비단 긍정의 힘을 심어주는 영화만이 힐링무비가 아니라, 이렇게 부드럽게 어루만지듯 한쪽 구석을 훓어주는 영화도 좋은 힐링무비다. 

비록 영화를 보고 기분 좋게 나오는 길에 다른 커플은 시시하고 지루하고 시간만 아깝다며 온갖 욕을 하며 지나가긴 했지만...


덧글

  • ようこ 2014/10/11 02:40 # 답글

    믿고보는 차태현이라...
    딱히 안 끌렸는데, 영화관 가봐야겠군요ㅎㅎㅎ
  • TokaNG 2014/10/12 15:08 #

    저는 차태현은 그리 믿지 않았지만...
  • 유카 2014/10/15 10:58 #

    믿고 보는 남상미.



    역시 이쁨...ㅎ
  • TokaNG 2014/10/26 02:33 #

    솔직히 그동안 이쁘다는 생각은 그닥 들지 않았었는데...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블랙)

10298
672
2145399

google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