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론. 영화애니이야기

왕은 아바론 섬에 잠들고,
나는 아바론 보다 잠들고...

감독은 오이시이 마모루인데, 영화는 오이시이 하지 않다.


공각기동대, 인랑, 패트레이버 극장판 등, 묵직한 철학적 이야기들을 정교한 작화로 세심하게 그려낸 오시이 마모루 감독 이름을 보고 어떤 영화인가 싶어 검색까지 해서 그리 나쁘지 않은 평들이 이어진 것을 보고 모험삼아 샀는데, 안타깝게도 그리 취향은 아니었다.
다른 작품들은 애니메이션이라서 작화나 연출, 효과들만 봐도 눈이 즐거울 수 있었지만, 이건 실사 영화인데도 화면 톤이 희뿌연 세피아로 일관되고 있어서 몽롱한 것이 꿈속을 헤매는 듯한 기분.
거기다 내용이 지루함을 유발하니 절로 졸음이 쏟아진다.

보통 DVD 관람을 인증할 때는 마음에 드는 컷이나 인상적인 대사를 띄워놓고 사진을 찍는 편인데, 안타깝게도 그런 장면을 보지 못한채 잠들어서 그런 것도 없음.

혹시 내가 잠든 이후에 괜찮은 전개가 이어졌으려나?
그렇지 않고서야 괜찮은 평들이 보일 이유가 없는데...

영화를 보는데 있어서 꽤나 관대한 편인데도, 이건 정말 애매하다.
기왕 사서 봤으니 돈이 아까워서라도 재밌었다고 스스로를 납득시켜야 하는데...


그러니까 재미가 검증된 다른 영화를 보며 기분 풀어야지.


덧글

  • 소시민 J 2014/06/08 17:08 # 답글

    아발론은 OST는 좋습니다.
    내용이 좀 애매하기는 한데, 후속작이자 시퀄인 '어설트 걸즈' 보단 나아요.
    (그거는 도대체 뭘 하자고 만든건지 이해가...)
  • TokaNG 2014/06/18 22:54 #

    영화볼 때 영상에 집중하느라 음악은 그리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지만 그렇다는 평이 꽤 많더군요.
  • deepthroat 2014/06/08 19:43 # 답글

    전 극장에서 봤었죠...ㅎㅎ
  • TokaNG 2014/06/18 22:54 #

    저런...
  • A3 2014/06/08 23:10 # 답글

    아바론! 이군요. ^^

    칙칙하고 무채색인 세상에서 웬 다리 짧은 개 한 마리와 오붓하고 정겹게 사는..
    단발머리 보브컷의 여주는 그 세계에서 나름 유명한 게이머입니다.
    게임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것으로 보아 직업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매번 게임을 끝내고 나면 가상현실 헬멧의 부작용으로 인한 구토를 합니다.
    그날그날 게임의 결과에 따라 보상이 화폐로 지급되고,
    다른 게이머들과 정보를 교환하면서 무기와 탄약, 식량을 보급받습니다.
    그녀가 작업장을 오가는 중간중간 등장하는 지하철이나 버스의 풍경은 정지영상 그 자체입니다.
    과연 그들이 사람일까 의심되기까지 하는. 일종의 NPC라고까지 보여지는.

    그러다가 침대에 누워 잠자는 '미귀환자' 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본격적인 전개로 접어듭니다.
    스페셜 클래스 A에 도전하다가 실패해서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유저들인데. 이 장면은 의미심장하죠.
    탱크와 무장헬기 미션을 깨고 최종보스로 고스트를 잡으면 클래스A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이에 여주가 다른 실력자들과 파티를 만들면서 결국 고스트를 깨고 혼자 클래스A에 진출하게 됩니다.

    그러고서는 엄청난 데이터가 필요한 레벨에 도달했다는 화면 속의 영상과 함께 모든 장치의 전원이 꺼집니다.
    여주의 칙칙하고 흐릿한 세계는 끝나고 이윽고 총천연색의 현실이 펼쳐집니다.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으로 넘치는 세계.
    거리마다 자신이 잃어버린 개의 사진이 담긴 포스터들로 가득하고.
    버스와 지하철 안에는 서로 즐겁게 이야기하며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아쉬는 혼란스러움을 느낍니다.

    아바론의 연주회를 알리는 허쉬파피를 닮은 개의 포스터를 따라 콘서트홀에 도착한 아쉬.
    아바론의 노래, 영웅들의 서사시가 울려퍼지는 연주회장에서.
    드디어 만납니다. 미귀환자를.

    고차원의 게임세상, 지극히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공간에
    안주해버린 미귀환자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쉬며
    ASH를 기다립니다. 여주 이름이 이제 생각났어요.
    아쉬. 클래스 아. 독일 발음인가봐요. 에이를 아라고 발음하는 걸 보면.

    영화에서는 미귀환자들이 그닥 많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고작해야 몇 명이예요.
    미귀환자 중 한 명이 아쉬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총에서 모든 총알을 다 빼버린 채
    아쉬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길을 선택합니다.
    그러고서는 아쉬의 품에 안겨 중요한 몇 마디를 합니다. 앞으로 계속 싸워나가라고 했던 거 같습니다.
    아쉬가 방아쇠를 당길 때 망설였던 모습을 보면서 그러지 말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이만큼 가상 현실에서 살았으면 이제는 여한이 없다고 말하려는 듯 보였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인셉션의 림보를 떠올리게 하네요.

    그는 마치 매트릭스의 녹색 코드가 허리케인처럼 공중으로 증발되듯이 육체가 코드화 되어 사라집니다.
    피를 철철 흘리며 영혼 없는 육신으로 놓여있을 줄만 알았던 그의 신체가 녹색 코드가 된다니.. 이런!
    역시 그는 클래스 아의 시민이 아니라 실제 칙칙한 색감의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미귀환자였던 셈이예요.

    아쉬는 클래스A에 도전하기 전에 경고 메세지를 받습니다. 그 안에서 죽으면 미귀환자가 된다. 그러니...
    모든 미션을 수행하고 무사 귀환하기 전까지 죽지 마라! 이거였습니다.
    아쉬에게 죽임을 당한 미귀환자는 그대로 죽은 거예요.
    다시 원래 세상으로 되돌아오지 못한 채.

    작업장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여전사 아쉬는 화면에서 보여지는
    종잇장처럼 얇은 픽셀들의 집합체인 적들을 무표정하게 처치합니다.
    그러나 총천연색의 가상 현실에서
    한때 자신과 같은 전사였던 레전드를 죽이는 행동에 대해서는 죄책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레전드로 오래 살았던 미귀환자는 아쉬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괜찮다고 말해줍니다.

    아쉬는 자신이 도달한 세계가 말 그대로. 아바론이 울려퍼지는 영웅들의 무덤.
    곧 가상의 사이버 공간이라는 점을 재인식하게 됩니다.
    그러고서는 미션을 수행할 것을 새롭게 다짐하게 되고.
    그 공간에서 또 다시 고스트가 나타나구요.
    어린 여자 아이 고스트는 아쉬에게 뭔가 메세지를 던집니다.
    그러고선 영화는 끝이 납니다.
    뭔가 뒷맛이 미진하고 찝찝하며 개운치 못한 모양새로.

    현실은 엄청난 데이터량을 필요로 하는 가상 공간과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가상 공간의 고된 삶이 진짜 현실일 수 있고.
    화사하고 생동감이 넘쳐보이는 현실같은 세상이 가상 공간일 수 있다는 점을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설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안에서 아쉬같이, 고도로 훈련된 전사들이 미션을 계속적으로 수행해나가고 있으며
    수많은 미귀환자들이 자신의 임무를 팽개친 채 현실의 우아함과 평온함에 만족하여 안주하는 모습과
    먼저 된 사람들이 나중되고 나중된 사람들이 먼저 되어서
    선배 기수의 전사들을 후배 기수의 전사들이 구하러 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매트릭스. 애니 매트릭스. 아바론. 인셉션.
    저는 이 영화들이 의미하는 바가 서로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애니 매트릭스에서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기억납니다.
    검은 선글라스를 쓴 요원들이 육상경기의 경주자들을 감시하는 이야기인데.
    그들이 시간의 벽을 뛰어넘는 신기록을 세울 때마다 현실의 공간을 초월하여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걸 결사적으로 막기 위해 더 이상 신기록을 세우지 못하도록 저지한다는 것이 그 에피소드의 줄거리였습니다.
    어떻게 저지하냐면, 그들을 휠체어에 앉히고 병원에서 여생을 보내야 된다 할지라도
    신기록을 내고 또 다른 차원의 벽을 뛰어넘어 자신들이 예측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설사 그 운동선수의 인생이 망가진다고 해도 그쯤이야 가볍게 넘길 수 있을 정도 입니다.

    거대한 사회의 시스템은 구성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보여주는 세상을 초월하여
    자신들이 만들어진 근본으로 돌입하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영화는 말합니다.
    계속적으로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며 초월적인 존재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시스템은 끊임없이 세상에 안주하기를 조장하는 소스코드를 구성원에게 흘려보냅니다.
    그걸 뛰어넘는 능력자가 나타났을 때 시스템은 긴장한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아바론은 애니 매트릭스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가상 현실의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즐거워하는 미귀환자들과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자 오로지 하나의 선택지 뿐인 아쉬를 대조합니다.

    하지만 인셉션과는 맥을 같이 한다고 보여집니다.
    이런 점에서 아쉬는 림보의 매력에 푹 빠진 마리앙 꼬띨라르? 와 반대되는 지점에 있는 캐릭터 입니다.
    가상 현실의 격전을 치루고 와서는 예측 가능한 일상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인물로 묘사되는데 반해,
    마리앙 꼬띨라르는 림보가 아니면 더 이상 만족을 느낄 수 없는 중독의 지점에 다다른 인물로 그려집니다.
    어쩌면 미귀환자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아쉬가 클래스A에 도전하여 미귀환자를 죽여 자신의 세계로 되돌리려고 하듯.
    디카프리오가 인셉션을 할 때마다 림보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아내를 설득하듯.
    자칫 디카프리오가 아내의 설득을 받아들여 현실의 끈을 놓을까봐
    장인과 그의 제자가 한 팀이 되어 디카프리오를 인셉션 하듯.

    세상은 남으려는 사람들과 데려가려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아바론은 미귀환자들의 무덤이지, 결코 그들이 안주해도 되는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고.
    영웅들이 싸우다 죽는 곳이 아바론이다.
    아바론은 이 세상이고. 이 세상은 마치 코드처럼 실제와 가상이 교묘하게 혼재된 곳이다.
    아바론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고도의 엄청난 데이터가 요구되며
    그 데이터를 처리하는데 마음을 쓰게 되면 그 세계에 녹아들어가게 되어 미귀환자가 된다고.
    끊임없이 경계하면서 자신의 임무를 생각하며 안주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저는 그렇게 영화를 보았습니다.

    생각하고 고민할 지점이 많은 영화라서 감독이 철학적으로 잘 만들었구나, 싶었습니다. ^^
  • TokaNG 2014/06/18 22:56 #

    본문보다 긴 덧글 감사합니다.
    거의 리뷰수준이라 감상포인트가 잘 정리되어 있네요.
    다음에 다시 아바론에 도전할 때 한 번 더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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