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는 없었다. (신세계) 영화애니이야기

와~ 신세계를 봤다!

가 이 영화를 보고난 후 첫 소감이었다.

사실 신세계를 보고 싶은 생각은 그다지 없었다.
걸출한 배우들을 늘어놓긴 했지만, 왠지 최민식이 함께 한 세 남자의 이야기가 범죄와의 전쟁을 연상케 해서 당장에 보기 보다는 주변의 평을 좀 살피고 느즈막히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당장은 평을 읽을 수록 왠지 볼 마음이 사그라들 것 같은 헨젤과 그레텔이나 이미 천만관객을 돌파하면서 승승장구하고있는 7번방의 선물을 먼저 보고 싶었다. (잭과 자이언트 슬레이어도 생각했었지만, 그건 살펴보니 28일 개봉이었고.)

하지만 친구의 바람으로 보게 된 신세계. 그리고 느와르의 신세계를 봤다.


사람들은 정말 재미있다. 조폭은 치가 떨리게 싫어하면서 조폭영화는 끊임없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전쟁을 두려워하면서 전쟁영화는 빗발치게 쏟아지지.
세상에 더는 없어야 할 전쟁과 조폭, 이 과격한 두 단어가 세상에 또 있을까 싶은 드라마를 그리기에는 가장 탁월한 소재라는게 아이러니하다.


우리나라 조폭영화는 정통 느와르보다는 조폭을 미화시킨다고 할 정도로 코믹하고 나중에는 애써 감동을 주려는 이상한 쪽으로 발전해와서 진절머리가 나기도 했었는데, 최근에 본 작품들은 그야말로 느와르라는 장르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묵직한 무언가를 선사한다.
물론 조폭두목주제에 상당히 멋있게 나와 사람을 홀리게도 하지만, 그 모습이 조폭을 미화시킨다기 보다는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준달까, 여타 코믹조폭물(두사부일체, 가문의 영광 시리즈)과는 확실히 다른 생각을 하게 한다.
영화에서 이렇게까지 조폭의 비참함을 어필하는데도 그게 되려 멋있어 보여 조폭을 동경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애초에 걸러먹은 거고.
신세계는 느와르라는 색에 맞게 아주 묵직하고 칙칙하고 암울하고 자욱한, 말 그대로 세상 살기 싫어지는 암흑세계를 아주 잘 보여준다.
그로 인해 차라리 내가 속한 이 사회가 얼마나 살만한지도...


최민식의 첫등장을 보고는 놀랐다. 범죄와의 전쟁에서와는 너무 다른 후덕한 아저씨 이미지에. 
아니, 범죄와의 전쟁에서도 아저씨 이미지이긴 했지만, 전혀 다른 느낌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왠지 최민식이 출연함으로 인해 전작인 범죄와의 전쟁과 나도 모르게 자꾸 비교하게 되었는데, 전혀 다른 맛이라 다행이었다.
범죄와의 전쟁은 그야말로 그시절의 조폭들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리얼리티가 넘치는 이야기였다면, 이번의 신세계는 보는 동안에 '아주 잘 짜여진 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극의 리얼함을 더하는 건 배우들의 연기력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인 상황과 일상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대사의 사용이라고 생각한다. 범죄와의 전쟁은 정말 지나왔던 시대의, 정말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의, 정말로 쓰였던 말들이 사용되어 극과 현실의 벽을 살짝 허물었다고 생각하는데, 신세계에는 조금은 작위적인 상황과, 만들어진 캐릭터와, 지어낸 대사들이 현실과의 벽을 확실히 나눴다고 본다.
물론 연기는 이쪽이나 저쪽이나 두말 할 것 없이 뛰어났지만, 배우들의 연기력과는 상관없이 그런 요소들이 리얼함을 눌렀고, 그래서 더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아주 잘 만들어진 극을 감탄하며 봤다.

이렇게 두 영화의 특이점을 긋고 나니 더는 비교할 필요 없이 영화에 더 빠져들 수 있었다.
최민식은 이러나 저러나 너무 연기를 잘해서 극과 현실의 경계를 자꾸만 무너뜨리지만..

최민식 다음으로 눈이 가는 배우는 역시 황정민이다.
이 영화를 보고 조폭을 동경하게 되는 바보가 생긴다면, 그건 아마도 황정민이 연기한 정청 때문일 것 같다.
유쾌할 땐 아주 유쾌하고, 단호할 땐 무서울 정도로 단호하며, 그러면서도 정을 쉽게 놓지 못하는, 남자들이 동경할만한 사나이를 조폭이라는 역할로 아주 잘 보여줬다.

조폭이 아닐 땐 다소 어눌한 아저씨 모습이지만, 조폭으로 변신하면 누구보다 무서운 사나이로 변모하는 황정민의 연기도 실로 감탄할만 하다. 아마 댄싱퀸이나 너는 내운명,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등으로 황정민을 처음 접했던 사람들은 그의 조폭모습을 보고 얼떨떨하겠다 싶다. 그 순딩이 아저씨가 이렇게 날카로운 이빨을 숨기고 있다니.
왠지 조폭일 때마저 푸근한 인상을 풍기는 송강호와는 다른 배우다.
그가 보여준 엘리베이터에서의 난투는 아직까지 살 떨리게 한다.

그 황정민과 맞서는 박성웅 또한 살 떨리게 무서운 연기를 보였지만, 그래서 인상적인 장면도 많았지만 캐릭터가 마음에 안들었다.
진짜 비열하기만 한 3류 양아치가 힘만 가진 모습이라, 현실의 조폭이라면 딱 저정도 급이겠지 싶은 생각이 든다.
그정도 급의 양아치를 연기까지 잘해서 보여주니 더 비열하게 느껴져서 소름이 끼친다.

이 영화를 현실과 가장 담 쌓게 했던 캐릭터. 사전정보 없이 남자주인공 세 명의 이름만 알고 봐서 송지효의 등장만으로도 놀랐는데, 그가 연기한 캐릭터는 너무나도 작위적이라서 덕분에 '아, 이건 잘 짜여진 극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송지효가 극의 몰입을 망치거나 할 정도로 연기를 못한 것도 아니고, 그정도의 비중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잠깐씩 등장할 때의 캐릭터는 아무리 고도의 훈련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현실에는 없을 것 같은 캐릭터라서 그의 등장은 신세계를 범죄와의 전쟁과의 선을 긋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시종일관 칙칙한 이야기만 그려내는 이 영화에서 예쁜 얼굴 비춰주니 한줄기 빛이 되어주는 느낌이고.
음, 예쁘긴 참 예쁘다.

연변 거지라는 무리로 김병옥 외 3 명이 나오는데, 김병옥도 연기를 못하는 배우는 아님에도 황해에서 이미 연변사투리를 현지인급으로 구사해준 김윤석 씨 덕에 이들의 사투리가 귀에 밟혀 개그캐릭터로만 느껴졌다. (애초에도 개그캐릭터이긴 하지만)
황해를 보기 전이었다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투리야 어떻게 하든 불편함 없이 들렸을 텐데, 김윤석 씨가 괜히 귀만 높여놨..
 


신세계.. 라는 제목은 이 두 사람에게 가장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었나 싶다.
이 두사람이 한 컷에 잡힐 때 신세계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렸고, 그래서 마지막에는 더 신세계가 없었다고 느껴질만큼.  
글을 쓰면서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명실상부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주인공, 이정재.
애초에 그가 그리려던 신세계와는 조금 다른 그림이 되겠지만, 그래도 신세계를 그려갈 붓을 쥐게 되었다.


각자 바라는 것이 달랐던 신세계.
결국 그 누가 바란 세계도 아닌 전혀 다른 신세계가 펼쳐지게 되었지만, 그래서 나는 영화에서 신세계를 봤다.

그야말로 신세계다.

덧글

  • 동사서독 2013/02/25 20:56 # 답글

    처음엔 무간도를 생각했었는데 갈수록 흑사회2를 떠올리게 되더라구요.
    돈 아깝지 않은, 재미있는 영화였어요.
  • TokaNG 2013/03/02 16:42 #

    저도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아서인지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흥미진진하더군요.
    보길 잘했다는 생각.
  • 남선북마 2013/02/26 01:15 # 답글

    최민식은 이제 확연히 늙어가는 걸 숨길수가 없더군요.. 그래서인지 연기 스펙트럼도 고정되어 가는 것같고.. 그중에서도 이번영화에서는 뭔가 기력이 없어 보여서 좀 안타까웠..
    본인도 악마를 보았다 같은 연기는 이제 하고싶지않다고 말하기도 하고..
  • TokaNG 2013/03/02 16:43 #

    정말 얼굴에 주름이 확~ 많아진 것 같아서 가슴아팠습니다. 저렇게 늙다가 어느순간 그의 연기를 보지 못하게 되는 날도 오겠구나 싶어서.
  • 뵤니 2013/02/26 19:03 # 답글

    황정민이 너무 인상적인 영화였어요ㅋㅋㅋ 의외로 최민식이 너무 비중이 적다고 해야하나 그래서 놀란..ㅋㅋ
  • TokaNG 2013/03/02 16:44 #

    하지만 그럼에도 이야기의 중심에 있긴 하더군요. 음, 중심이라기 보다는 배후에.
    사실 바둑중계를 볼 때에도 돌을 놓는 기사보다는 바둑판을 더 보여주니까요.
  • Mr.Entropy 2013/03/02 11:33 # 답글

    김윤석씨 같은 배우가 캐스팅이 되었어도 재미가 있었을것 같긴한데....
    박성웅씨가 참 압도적인 악역포스를...
  • TokaNG 2013/03/02 16:46 #

    왠지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무게, 영상톤을 생각했을 때 김윤석씨의 출연은 극을 한층 무겁게 만들 우려가..
    다른 배우들과의 조화도 생각해보면 탁월한 캐스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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