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와 그의 탐정들. 내가노는이야기

분명 지난번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처음으로 소설책들을 사면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엔 손대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었는데, 손대지 않기는 개뿔이, 한 권, 두 권 사모은 그의 소설이 어느새 이만큼 쌓였다.
그리고 여느 소설과는 달리 사는 족족 바로바로 읽어서 기존의 사서 쟁여뒀던 책들이 자꾸만 밀려나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두 탐정, 일명 갈릴레오라고 불리는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 마나부, 그리고 최근에 삘이 꽂힌 가가 교이치로, 두 사람의 이야기들을 주로 읽고 있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다 읽고나면 다른 책들에도 손을 뻗게 되지 않을까..

우선은 용의자 X의 헌신으로 먼저 익숙해진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부터.
유가와 마나부가 활약하는 갈릴레오 시리즈는 추리물이지만 약간의 로맨스를 섞은 느낌이라서 읽고 있으면 애처롭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고, 뭔가 추리물에서는 느끼기 힘든 감정들을 표현하고 있다.


 그중 제일 먼저 읽은 (엄밀히 따지자면 몇 년전에 읽은 용의자 X의 헌신이 처음이긴 하지만) 예지몽에서는 추리 + 로맨스에 오컬트까지 끼얹었다.

총 다섯 편의 짧은 이야기들로 구성된 이 책에서는 매 사건마다 데자뷰, 괴소음, 환영, 유체이탈 등 다소 초현실적인 요소들을 제시해서 미궁에 빠질법한 수수께끼를 갈릴레오 탐정이 과학적인 방법으로 하나 하나 풀어나감으로써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미처 생각해보진 못했던 현상이나, 사람의 무의식에 각인되어있던 요소 하나 하나들이 조합되면서 마치 초현실인 것처럼 둔갑되는 모습들에, 뭐든 논리적으로 입증해서 직성이 풀리는 과학자의 추리가 더욱 재밌게 다가온다.

과학으론 풀지 못할 것 같던 초자연 현상과, 그것을 하나 하나 풀어나가는 과학자와의 대결을 보는 것도 같아서 더욱 흥미롭다.
다만, 두께도 얇은데, 그게 또 다섯등분이 되어서 하나의 이야기가 너무 짧게 느껴져 감질맛이 나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오컬트와 과학의 대결이라는 소재가 어디 흔한가.
 


 그리고 두번째로 읽은 탐정 갈릴레오.
사실상 유가와가 탐정으로써의 첫걸음을 내딛는 이야기일지도.

이 책도 역시 다섯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있다.
타오르다, 옮겨 붙다, 썩다, 폭발하다, 이탈하다 등의 키워드로 전개되는 각각의 사건은, 예지몽과 마찬가지로 다소 초자연적인 현상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먼저 쓰여졌음에도, 뒤에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조금은 신선함이 떨어졌다.
항상 사람은 무엇이 먼저 만들어졌나 보다는, 무엇을 먼저 접했느냐로 신선하다 아니다를 판가름하게 되니까. (심지어는 먼저 만들어졌어도 후에 접하게 되면 그것이 표절이 되기도 하니...)

그렇다곤 해도 역시 초자연적인 현상을 과학적 논리로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모습은 흥미롭다.
책장을 넘기고 수수께끼가 하나씩 풀릴 때마다 아하~ 하고 납득하게 되면서도 마냥 신기하기도 하다.
역시 과학은 재밌어.

과학적 지식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한 사건들의 모음이라 마치 마술쇼를 보는 것도 같다.
상상을 초월하는 과학은 마술과도 같으니까.


그리고 갈릴레오 탐정 다음으로 접하게 된 가가 형사.
갈리레오의 논리적이고 똑부러지는 추리력에 감탄하며 그가 등장하는 책들을 읽어봤지만, 언젠가 알라딘에서 책을 고르고 있을 때 '가가 탐정이 갈릴레오보다 인간적이어서 좋더라.' 는, 옆에서 남자친구와 책을 고르고 있던 여학생의 말에 호기심이 생겨 그는 과연 어떤 탐정일까? 하며 한 권 집어들었었다.


 그 가가 형사를 처음 접하게 된 악의.
제목부터가 인간의 마음 깊은 곳까지 쑤셔보는 것 같은 느낌이라 다소 거친 이야기는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책장을 펼치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어갈수록 몰입도가 장난이 아니다.

정말 사람이 악의를 가지면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잔인해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섬찟하기까지 하지만, 사건을 풀어가는 가가 형사의 이야기는 조곤조곤하고 편안하다.

사건의 발생과 범인의 검거, 범행동기까지 모든 것이 풀어지도록 책장은 반도 넘어가지 않았기에 의아한 마음에 계속 읽어나가니, 상상치도 못할 뒷통수를 때려서 아야! 하고 고함이 나올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추리는 때로는 편안하고, 때로는 옛이야기 듣는 것처럼 향수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손에 땀을 쥐게도 하니 논리로 똘똘 뭉쳐 다소 딱딱한 느낌마저 들던 갈릴레오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풍긴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자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가가 형사의 성실함과, 사소한 단서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는 예리함이 더욱 매력적이어서 확실히 갈릴레오보단 가가쪽이 여성분들 취향이기도 하겠구나 하고 납득했다.
더군다나 묘사된 바로는 운동으로 다져진 건장한 몸과 훤칠한 키, 매력적인 눈웃음까지 더해지니 내적인 면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도 반하겠구나 싶다.

갈릴레오 시리즈와는 달리 한 권을 다 써서 사건 하나를 진행해 나가니 더욱 치밀하고 드라마틱해서 볼만하다.
그리고 그만큼 그의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어서 곧장 가가 형사가 등장하는 또다른 책을 읽고 싶어졌다.  


 그래서 곧장 집어든 신참자.
사실 악의에 수록된 옮긴이의 말에서 언급되는 붉은 손가락을 먼저 읽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눈에 띄지 않았고, 대신 꽤 두꺼운 신참자라는 책이 눈에 띄어 어떤 책인가 설명을 읽어보니 가가 형사가 등장하길레 망설임 없이 집어들었다.

크게는 하나의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작게는 아홉 가지 이야기로 구성된 이 책은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너무나도 훈훈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각각의 챕터에서 사건의 주변인물들에게 능글맞은 웃음으로 허울없이 접근해서 사건과는 관계 없을 것만 같은 질문들만 해대는 가가의 모습을 보면서 얘 왜 이러나 싶기도 하지만, 챕터가 하나 끝날 때마다 흐뭇한 아빠 미소를 짓게 되니 이 또한 흥미롭다.

어머니를 위하는 아들의 사랑, 고부간의 갈등, 아들에 대한 그리움, 친구의 오해 등을 아무렇지 않다는 듯 헤실거리는 웃음으로 풀어나가는 가가 형사는 확실히 인간미가 넘치고 따뜻하기까지 하다.
그 하나 하나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훈훈하다 보니 정작 주가 되는 살인사건은 읽는 동안에 점점 잊혀지고, 나중에는 범인이 누군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이 옅어져서 장르의 정체성이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재밌게 읽었다.
여느 소설책보다 100여페이지나 많은 두꺼운 책임에도 한 장 한 장 줄어드는 페이지가 아깝게 느껴질 정도로.
그리고 이 책을 읽고 가가 형사에 완전히 반해서 이후로 갈릴레오는 뒷전으로 미루고 가가 형사 시리즈들을 찾아서 읽게 되었다.


 신참자를 다 읽고 혹시나 싶어 다시 알라딘에 들렀을 때 마침 딱 한 권 눈에 띄길레 냉큼 집어든 붉은 손가락.
악의에서 이미 언급되어서 가가 형사가 나올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당췌 내용이 반절 가까이 흘러가도록 등장하질 않아서 의아했다.
하지만 이내 그가 등장했을 때, 드디어 올 것이 왔다! 하고 환호하며 더욱 집중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붉은 손가락은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 아니라, 용의자 X의 헌신과 마찬가지로 이미 드러난 범인이 알리바이를 만들고, 그것을 가가 형사가 깨나가는 두뇌대결을 그리고 있는데, 같은 형식으로 두 천재가 추리대결을 펼치는 용의자 X의 헌신에 비하자면 이쪽은 알리바이를 만드는 범인쪽이 너무나도 허술해서 조금은 맥이 빠진다.
이시가와처럼 치밀하게 짜여진 알리바이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대충 얼버무리는 쪽을 택한 탓에 금세 구멍이 생기고 그 구멍어 점점 커져 덜미를 잡힌다.

거기서 끝나는가 싶어 허탈할뻔 했지만..
그 외적인 부분에서 다소의 재미를 챙겨주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역시 가가 형사의 인간미 넘치는 모습들을 빼먹지 않아서 마지막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책장을 덮었다.

  

일단 여기까지.
감상을 한꺼번에 쓰려니 읽은지도 한참 시일이 지나서 가물거리는데다, 한두권이 아니라서 글이 점점 길어지니 쓰다가 지친다.
나머지 가가 형사 시리즈는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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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핀빤치 2012/10/25 00:47 # 답글

    예지몽 재밌어보이네요! 다음에 시간되면 저도 중고로 구입해봐야겠어요ㅎㅎ
  • TokaNG 2012/11/01 22:39 #

    개인적으로 추천작은 '악의'입니다.
    신참자도 상당히 좋았구요.
  • 비류연 2012/10/25 19:06 # 답글

    오오오오....

    왜...
    태교책보다...

    이런 책들에 눈길이 가는지. ㅜ_ㅜ

    요새 완전 독서삼매경중인데. 얘네도 포함시켜놔야겠어요. ㅎㅎ
  • TokaNG 2012/11/01 22:41 #

    저도 독서삼매경이라 이 책, 저 책 사정없이 사모으고 있는데, 정작 읽는 건 일주일에 한 권..ㅜㅡ
    책 읽는 속도가 사재기 속도를 못 따라가고 있어요.ㅠㅠ
  • pientia 2012/11/12 07:01 # 답글

    아 가지고 계신 책중에 저도 3권있어요.
    신참자는 일드보고 책을 사보려고 했는데
    요즘 책만 쌓아 두고 읽지를 않아서
    서점가면 집었다 놨다 하는 책입니다. ㅎㅎ
  • TokaNG 2012/11/25 20:51 #

    신참자 완전 추천입니다. 저 책들중에 추천작을 고르라면 악의랑 신참자 정도?
    저도 읽다보니 갈릴레오 탐정시리즈보단 가가 형사 시리즈가 더 마음에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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