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속의 사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영화애니이야기

이글루스 시사회에 당첨되어 보게 된 풋풋한 대만 영화.
사실 이전부터 올비님의 리뷰가 구미를 당기게 하는 영화여서 시사회에 당첨되지 않더라도 개봉하면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영화였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각본을 쓴 감독이 일본만화 광인지, 조금은 흔한 일본 학원연애물처럼 시작되는 오프닝, 영화 사이 사이 당시에 풍미를 누렸던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 등이 언급되는 것 또한 재밌다고 생각되는 이 영화는 첫사랑을 그린 이야기라면서 초반에는 시종일관 코믹한 장면들만 연출되고 있다.
조금은 짖궂고, 조금은 억지스럽지만 그래도 관객들을 하나로 모아 웃음짓게 하는 익살스런 장면들이 이어지고 이어지면서 비로소 영화는 정상적인 궤도에 오른다.


첫사랑.
첫만남, 첫눈, 첫경험, 첫느낌, 첫키스...
항상 처음이라는 말은 사람을 설레이게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첫사랑.
그 첫사랑을 다룬 이야기라서 홍보에서도 그렇고, 여기저기에서 건축학개론과 자주 견주어진다.

첫사랑은 늘 그렇다.
당시에는 그것이 사랑인지 채 느끼지도 못하고, 한참 후에야 깨달았을 때 가슴 시린 후회로 남는다.


처음엔 자신은 그렇지 않은 척 소녀를 짖궂게 괴롭히던 소년과, 그런 소년을 유치하다고 비난하던 소녀는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학창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소녀를 대신해 의자를 번쩍 든 순간부터 이미 소년은 소녀를 좋아하게 되었고, 소녀는 그런 소년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영화는 시종일관 사람들을 정신없이 웃기면서도,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더 풋풋해지고, 그 풋풋함이 시나브로 익어서 달콤해진다.
감독이 자신의 이야기를 그대로 쓰고 담았다는 이 영화는, 사랑에 빠졌던 사람이 그 첫사랑을 그리며 쓴 이야기라서인지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정말로 사랑에 빠진 것 같이 아름답고, 닭살스럽고, 수줍으며, 어느 때는 비수가 되기도 한다.
누구라도 첫사랑에 가슴아파할 때 한번쯤은 입속에 맴돌았던 말들, 차마 입밖으로 내지 못했던 말들, 그런 뻔한 말들이 이어진다. 
그러고 보면, 사랑에 빠진 사람은 남녀노소는 물론, 국적으로 떠나서도 다 같은 마음인가보다.
생소하기만 한 대만영화를 보면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걸 보니...


언제나 후회로 끝나게 되는, 바보 같은 첫사랑 이야기라 마지막엔 안타까움이 있지만, 역시 안타까운 첫사랑을 그린 건축학개론과는 다른 마무리를 보인다.
건축학개론이 미련이 남은 첫사랑을 다시 만나 지난 날들을 추억하며 가슴속에 품고 있던 애틋한 마음들을 하나 둘 정리해가는 다소 가슴 시린 첫사랑이었다면,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자신이 좋아했던 소녀의 앞날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축복해주며 소녀를 좋아했던 마음이 변치 않았음을,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이 더 행복함을 보여주는 따뜻한 첫사랑이다.

빛바랜 회색빛 첫사랑과 아직까지도 환하게 빛나는 분홍빛 첫사랑의 느낌이라 여운이 아주 다르다.

앞서도 말했지만, 사랑에 빠졌던 사람이 그 사랑을 그리며 쓴 이 영화에는 사랑에 관한,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사들이 많이도 쏟아진다. (그중 일부가 여기에..)
그 대사들이 비수가 되어 가슴을 찌를 때마다 따끔거리면서도 화면에 그려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흐뭇한 미소마저 지어진다.
그리고 클라이막스에서의 그 격정적인 키스는 모든 관객의 입에서 탄성을 자아낸다.
아.. 저것이 첫사랑의 몸부림이구나.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 아주 잠깐동안 이어진 감독과 남자주인공의 무대인사에서 감독이 마지막으로 던진 말은 아직까지 귓가에 맴돈다.

"그 소녀를 보낸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실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바보 같은 실수를 하지 마시고 지금 당신에게 찾아온 사랑에 도전하세요."

영어로 말한데다, 통역도 해주지 않아서 대충의 뉘앙스만 알아들었을 뿐이지만, 대충 저런 식이었던 그의 말은 너무나도 단호해서 나도 모르게 옆사람의 손을 꼬옥 잡게 했다.

항상 입버릇처럼 했던 말들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도전은...


...



평이 좋았다지만 생소한 대만의 영화라서 조금은 우려스러운 마음에, 스틸컷으로 봤던 여주인공이 너무 예뻐서 눈요기나 하고자 신청했다가 덜컥 당첨되어 보게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영화가 내게 보여준 것은 예쁜 여주인공만이, 탐스러운 남주인공의 엉덩이만이 아닌, 더 큰 무언가였다.

첫사랑은 후회로 끝났지만, 다시 그런 바보 같은 사랑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건축학개론을 보면서 느꼈던 그 느낌을, 그 심정을..

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첫사랑처럼 설레이고, 첫사랑처럼 두근거리다가, 첫사랑처럼 풋풋하게 시작되고, 첫사랑처럼 후회로 끝난다.
매번 첫사랑이 반복된다.


그래, 첫사랑은 늘 그렇다.
당시에는 그것이 사랑인지 채 느끼지도 못하고, 한참 후에야 깨달았을 때 가슴 시린 후회로 남는다.
그리고 매번 첫사랑처럼 다가오는 새로운 사랑 역시 그렇다.
당시에는 이것이 사랑인지 무언지도 모른채 우물쭈물 하다 그 사람을 떠나보내고는, 돌아서서 '만약에 그때 우리가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혼자 되뇌이게 된다.

자신의 눈속에, 마음속에 누가 들어있는지 제대로 보기란 생각보다 힘들다.

그러니까, 내 눈속의 사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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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깡이 窮狀 茶飯事♠ : 첫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바다가 들린다) 2012-08-15 19:16:26 #

    ... 미처 찾지 못했고, 인터넷으로 주문하기전에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보자 싶어서 돌려봤다.그리고 새삼 깨달았다.잠시 까먹고 있었는데.. 이것도 건축학개론이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처럼 첫사랑을 그린 작품이었다는 걸.. 특별할 것 없이 다가온 인연, 그리고 이어지는 조금은 특별한 에피소드, 큰 감정의 변화 없이 그저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 more

  • ♠또깡이 窮狀 茶飯事♠ : 아는 사람 있을까 모르겠지만... 2012-08-31 21:37:17 #

    ... 사실 별건 아닌데, 문득 티비 보다 떠올라서. 원데이 아큐브 모이스트 CF 메인모델이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남자주인공, 가진동이다. 의외의 곳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이면 괜히 길에서 아는 사람 만난 것처럼 반가움. 가진동은 날 모르겠지만... ... more

덧글

  • 랩스타 2012/12/24 11:15 # 삭제 답글

    좋은 리뷰 잘보고 갑니다
  • TokaNG 2013/03/05 23:18 #

    감사합니다.
  • r 2014/03/08 12:34 # 삭제 답글

    학원물 광이 아니라 감독의 첫사랑을 영화로 만든거에요
  • TokaNG 2014/03/08 12:52 #

    알고있습니다. 시사회에서 감독의 설명을 직접 들어서.
    학원물 광이라기보다는, 일본만화를 많이 보고 자란 만화광인 것 같다고 했는데요..
    만화적인 연출이 돋보여서 그런 표현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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