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내가노는이야기

동명의 영화가 꽤나 호평이었던 기억이 있어서, 원작소설을 사서 읽어보았다.
그런데,

여태 접했던 일본의 로맨스물(영화, 소설, 만화 통합)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재미가 없었다.
물론 감동도...


고교생들의 풋사랑 이야기는 예쁘게 잘 그리면 풋풋하고 신선하고 상큼하지만, 못 그리면 건방지고 무모하고 싸가지 없어 보인다.
이 작품은 내게는 안타깝게도 후자.
고교생이다 보니 사랑에 있어서 사회적 지위나 조건 등에 따른 난관도 없었고, 가족간에 발생하는 갈등도 없었다.
다만 둘 사이를 방해하고 갈라놓는 건 뻔하디 뻔한 불치병.
그 뻔한 불치병을 소재로도 얼마든지 가슴 아린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은 그러질 못했다.
마치 연공을 봤을 때와 같은 발칙함.
읽는 내내 그 감동 없고 무모하기만 했던 연공이 떠올라서 불편했다.

고교생들의 사랑이라고 그러라는 법은 없을 텐데..

서정적인 분위기의 배경묘사에, 달콤하고 쑥쓰러운 남녀간의 행동을 그리며 애틋한 분위기를 연출할뻔 하지만, 남자가 입을 여는 순간 애써 잡혔던 분위기는 깨진다.
쓸데없이 말이 너무 많다.
 
연애를 감정묘사를 통해 그려내지 않고, 남자가 내뱉는 대사를 통해 표현하려 하니 너무 설명적이어서 감정이입이 안된다.
마치 연애백서 강의를 듣는 듯한 기분이다.
머리로는 납득이 갈지 몰라도,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다.

아니, 머리로 납득하기에는 너무나도 유치하고 편협하고 오만으로 뭉친 철부지 고교생의 사고라서 그조차도 불만이다.
어째서 작가는 로맨스소설의 남자주인공에게 좀 더 성숙한 사고를 심어주지 않았을까?

보통 학원연애물을 보더라도, 남녀 주인공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성숙한 사고로 남녀노소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애틋함을 전달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어째 이 작품에선 철부지 고교생의 모습 그 이상은 아니라서 나이 먹은 아저씨가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이들 연애질을 그린 작품이니 당연한거 아닌가?' 라고 반문하기에는, 소설이란게 연령대를 특정하고 쓰여지는 것은 아니니까 나같은 아저씨에게도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해줬으면 좋겠는데...

남녀 주인공, 사쿠타로아키의 연애질을 훔쳐보며 부러운 미소를 씨익 한번 지어보게도 되지만, 몇몇 장면에 한정된다는게 안타까움.
그런 흐뭇한 미소가 내내 번지지 못하고, 어쩌다 한번 짓고 마는 로맨스물이라 나중에 불치병이라는 거대한 시련이 다가와도 그다지 애잔하지 않다.
병들어 누워있는 아키의 심리변화나 행동에 대해서는 그다지 기술되지 않고, 그런 아키를 지켜보는 사쿠타로만 집중조명되어 시련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욱 반감한다.
남자의 징징거림만 나오고, 여자의 고통이 배제되어 있으니 얼마나 가벼워 보이는지.


읽으면 읽을 수록 점점 더 연공을 닮았다.
여자는 초연하고 감정을 잘 잡아주는데, 남자는 떼쓰고 징징거려서 여자가 잡아준 감정을 흐트러뜨린다.
그러다가 마지막 장의 에필로그는 너무나도 뜬금없고 쌩뚱맞다.
프롤로그에서 조금의 언급이라도 있었다면 에필로그가 이렇게까지 걸리적거리진 않을 텐데, '도대체 이 마지막 장은 왜 쓴 거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런 개연성도 없고, 원인도, 결말도 없는 사족이었다.


그러다가 '영화는 어째서 평이 좋았던 거지?' 싶어 검색해서 시놉을 읽어보니, 맙소사, 영화 시놉이 소설보다 훨씬 낫다.
이 짧은 시놉에서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개연성있게 잘 연결되어있고, 회상씬이 되는 고교시절 사랑이야기도 더욱 애잔하게 다가온다.
영화 본편에서 이 시놉을 일본 멜로 특유의 서정적인 화면으로 잘 담아냈다면 충분히 평이 좋을만도 하겠다 싶다.

이건 원작이 좋아서 영화가 잘된 게 아니라, 영화가 원작을 더 잘 살려낸 걸지도.



핑백

덧글

  • 꽃가루노숙자 2012/07/02 09:14 # 답글

    전 원작 읽고 영화 본 케이슨데 원작은 재밌었고 영화는 그닥... 영화에서 건질 건 엔딩곡외엔... 게다가 원작은 영화의 거기에서 재 안뿌리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뿌리는 부분이찡했는데 영화는 제목대로 세상의 중심에서 뿌리고 엔딩이더군요. 뮝미?
  • TokaNG 2012/07/07 00:56 #

    영화에선 어떻게 묘사됐는지 모르겠지만, 소설에선 내내 남자의 징징거림만 부각되어서 읽다 지쳤습니다.
    초반에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과, 다정했던 한때를 그린 장면들이 그려지며 나름 애틋한 분위기를 연출하긴 했지만, 갈수록 애틋함은 빛바래고 징징거림만..

    최악의 로맨스라고 생각했던 연공이 떠오를 정도니 말 다했습니다.
    으음...
  • 마노 2012/07/02 09:22 # 삭제 답글

    지나가다가 오래전 눈물지으며 봤던게 기억나서 끄적입니다
    영화보다는 드라마가 개인적으로 잼있더군요
  • TokaNG 2012/07/07 00:57 #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더군요.
    그렇게까지 다양하게 만들어질 정도의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연출에 따라 이미지도 달라지겠죠. : )
  • Digi 2012/07/02 14:01 # 삭제 답글

    전 드라마 -> 영화 -> 소설 순이었습니다만
    뒤로 갈수록 실망이었습니다.

    드라마는 울면서 봤고, 영화는 엔딩곡만 기억나고
    소설책은 집어 던질뻔 한 기억이 납니다.
  • TokaNG 2012/07/07 00:58 #

    아키가 병에 걸리고서부터는 거의 의무감으로 읽었습니다.
  • 명상 2012/07/02 20:41 # 답글

    세카츄 소설은 진짜 구리고 구리고 또 구리기로 유명합니다. 일본의 어떤 유명한 평론가는 [이런 소설이 베스트 셀러라는 것은 일본의 읽는 힘이 멸망했다는 증거다!] 라는 혹평까지 했다고 하죠(...)
  • TokaNG 2012/07/07 00:58 #

    그정도까지 혹평하긴 미안하고..
    재밌게 보신 분들도 적진 않으니까요.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블랙)

41169
984
2139927

google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