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남자들의 이야기.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영화애니이야기

90년대, 노태우 대통령이 선언한 범죄와의 전쟁을 뉴스로 접했을 때는 아직 어려서 정말로 전쟁(?)이 끝나면 세상의 나쁜놈들이 다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범죄와의 전쟁이 몇 번이나 거듭된 지금도 나쁜놈들은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고, 범죄는 사라지지 않았다.


하정우 + 최민식이라는 카드를 내세운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그야말로 생 남자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가 진짜 남자스러운 언행을 선보인다. 안타깝게도 좋은놈들이 아닌, 그야말로 나쁜놈들이지만.

부산을 배경으로 그려진 영화라 더욱 그들의 언행이 제대로 와닿았다.
80년에 태어나 90년대를 거쳐 살아오면서, 그와 같은 언행을 하는 부산남자들을 질리도록 봐왔으니.
다행스럽게도 그들 모두가 나쁜놈들은 아니었으나, 왠지 '남자라면' 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닮은 모습이라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물론 요즘 같은 때라면 택도 없을 마초근성으로 똘똘 뭉친 그들이었지만..


그저 주먹 하나 믿고 남들 위에 으시대면서 힘자랑을 하는 바보들은 진짜 나쁜놈이 되기 어렵다.
머리가 나쁘거든.

그 와중에도 다소 머리를 굴리면서 힘이 있는 자들 위에 군림하며 카리스마를 뽐내는 놈들이 있긴 하지만, 결국 이들도 진정한 나쁜놈이 되긴 힘들다.

진짜 나쁜놈은 주먹질을 하지 않아도 머리가 좋아서 남의 힘으로 꼭대기 위에 서는 놈들이다.
'내가 낸데' 하는 배짱과, 한번 스친 인연도 철저하게 이용해먹을 줄 아는 인맥과, 그들을 잘 구워삶을 수 있는 세치 혀.
정말 나쁜놈은 힘을 쓰는 놈들이 아니라, 대가리를 쓰는 놈들이었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혈연과 지연, 건너 건너 아는 사람들까지 온갖 인맥을 동원해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모습은 90년대 이후로 사라져야 할 모습이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시대를 착각하게 된다.
분명히 스크린에 비춰지는 저 우스꽝스러운(?) 모습들은 80년대에서부터 90년에 이르기까지를 그려낸 모습인데, 21세기가 10여년을 훌쩍 지난 지금도 전혀 달라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세상은 혈연, 지연, 학연에 의해 움직여지고, 그렇게 끈이 닿는 사람들만 사람들 위에 군림하게 된다.
조금은 씁쓸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우스꽝스럽다.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대놓고 웃긴다.
괜객들도 어이가 없어서 자지러지게 웃는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일상이었다.
요즘은 애써 숨기려고라도 하지만, 당시에는...



나쁜놈들은 자기보다 덜 나쁜놈들을 이용해먹고 산다.
그러면서 자기합리화를 하며 스스로는 나쁘지 않다고 위안한다.
뒷세계에서 주먹들과 어울리며 사람들을 등쳐먹던 나쁜놈들은 이제 시대가 바뀌면서 밝은 곳으로 나와서 높은 곳에서 더욱 당당하게 남들을 등쳐먹고 살아간다.
영화 말미에 그려지는 영상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살아있는' 영화를 보았다.
배우들의 연기도 살아있고, 그들이 내뱉는 대사도 살아있고, 각각의 캐릭터들이 아주 잘 살아서 숨쉬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 익히 봐왔던 모습들을 아주 리얼하게 그려내는 모습들을 보면서, 스크린 너머로 관람하는 관객이라기 보다는 그들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뒤에 숨어서 그들을 지켜보는 관찰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술을 대작하며 대화를 나누는 하정우와 최민식의 모습은 마치 어린 시절 보았던 아버지의 모습, 큰형의 모습과 흡사해서 깜짝 놀랐다. (아버지, 큰형이 나쁜사람이라는 건 아니지만)
그 당시 마초성이 강한 남자들의 대화를 너무나도 리얼하게 잘 재현해놓아서, 맛깔스러운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보다는 대사를 쓴 작가가 더 궁금해졌다. 마초성이 강한 부산 남자들의 입버릇은 거기서 거기인가?

조폭들의 행태를 그린 영화지만, 여느 조폭영화처럼 그들의 우정과 의리를 잘 포장해서 과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비열한 면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그들의 싸움 또한 무협영화처럼 보기 좋게 그려내지 않아서 더욱 실감났다.

이런 실감나는 영화를 볼 때마다

'그래, 우리 사는 세상이 이따위란 말이지?'

하고 한숨을 내쉬게 된다.

영화의 시작에서는 특정 사건, 인물과는 상관이 없는 픽션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그런 모습들이 아주 거짓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을 테니까.


나쁜놈들의 전성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뱀발
영화가 끝나고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에 제 이름이 보여서 반가웠습니다.
혹시 이후에 영화 보실 분들은 유심히 보시라는.. 세월이 흘러 최민식의 아들이 또 아들을 낳아 돌잔치를 하는데, 그 아이의 실명이 제 이름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어제 영화를 보러 갔는데, 부스에 붙은 안내문을 보니 오늘 같은 상영관에 주연배우 무대인사가 있다는 문구가..
지금쯤이면 왔다 갔겠네요.
무대인사를 하는 상영관의 무대가 객석과 아주 가까워서 배우들을 실물로 보면 아주 좋겠던데..
친구랑 '하루 미뤄서 내일 볼까?' 하다가 말았습니다.
남자배우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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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은화령선 2012/02/05 20:57 # 답글

    응?!?!?!?!?
  • TokaNG 2012/02/05 20:57 #

    응???
  • 은화령선 2012/02/05 20:59 #

    마지막이 신경쓰이는데..
    이름이 보인다는건.. 뭦?!?!
  • TokaNG 2012/02/05 21:00 #

    그냥 동명이인 나온다구요.
  • 이도 2012/02/05 20:59 # 삭제 답글

    세줄 요약점여~
  • TokaNG 2012/02/05 21:00 #

    한 줄 요악 가능.

    '살아있는 영화를 보았네!'
  • 이세리나 2012/02/05 22:11 # 답글

    정말 킹왕짱 재밌게 봤습니다. 'ㅅ'

    재밌으면서도 지저분한 내용으로 인한 씁쓸함을 지울수 없었던, 바로 그런 영화였네요.
  • TokaNG 2012/02/05 22:20 #

    요즘도 별반 다르지 않음이 더 씁쓸하지요.
    90년대의 정부는 누구랑 전쟁을 했던 걸까요?
  • 이세리나 2012/02/05 22:21 #

    인맥이란게 전혀 없는 말 그대로 조폭이 아닌 깡패랑요..__)..
  • TokaNG 2012/02/06 22:49 #

    걔들은 깡패가 아니라, 그냥 양아치죠.
  • 유니콘 2012/02/06 14:14 # 답글

    근데 머 사실 한국의 공권력이 조폭과의 관계에서 이젠 게임 끝났다 할 수 있는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이 저 시대를 쭈욱 걸치면서 나름 민심회유책으로 해 놓던 짓들이 기반이 된 거긴 해서리 저 시대의 범죄와의 전쟁은 일제시대 호랑이 사냥(조선인들의 민원사항으로 가장 많이 접수된 것과 일본의 호피무역과의 이해관계가 맞은 케이스로 일본은 일타 쌍피(조선 민심 회유)를 노린 케이스였죠...)과 비슷한 의미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한국처럼 공권력이 강하고 사적 질서에 의해 통치되는 지하세계가 위축된 나라가 세상에 없다고 하죠... 한국은 가끔 나오는 범죄에 '이래서 무서워 밤에 다니겠나' 하지만 뉴욕시는 줄리아니 시장의 범죄와의 전쟁 이후 '감사합니다... 밤에 할렘가 중심 말고는 돌아다녀도 큰 사고 없습니다...' 이런 식이어서요...
  • TokaNG 2012/02/06 22:51 #

    조폭이 사라진게 아니라, 자기네들 밑에서 힘을 받쳐주고 있으니까 문제죠.
    범죄와의 전쟁을 한다면서 범죄가 사라지진 않고 되려 이용하고 있다니..
    다른 나라들도 마피아들을 정치인이 막 이용하고 그러던가요?
    그렇던가요?
    이 나라는 막장이에요. ㅋㅋㅋ
  • 유니콘 2012/02/06 23:11 #

    엄밀히 한국은 공권력이 정의를 잃은 경우 전국구 깡패가 되는건 사실이고 엄밀히 공권력이 워낙 세기 때문에 굳이 조폭의 힘을 빌릴 이유가 없죠... 한국에서 공권력의 힘을 초월할 조폭은 없기에 군부독재시절에는 대부분 최심복을 공권력 수뇌부에 박아두는 전략을 주로 취했죠... 엄밀히 그래서 공권력의 정당성을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함은 사실이긴 합니다... 이미 초토화된 곳에 합심하고 합법이라는 무기를 든 형국이 되니까 사실 훨 강력하다고 할 수 있죠... 이탈리아나 이런 곳들 중 제대로 안 좋은 곳들은 마피아가 정치인들을 쥐락 펴락한다는 루머는 많습니다... 특히 이탈리아의 베총리가 그 중심에 있죠... 머 거기에 러시아나 멕시코, 브라질 등등 중남미는 이미 말할 바도 없죠... 그 동네들은 이미 공권력이 매번 속된 말로 발리고 있죠...
  • TokaNG 2012/02/06 23:18 #

    우리나라 공권력이 세다는 말은 왠지 생소하네요. 워낙에 업신여김을 많이 당하는 공권력이다 보니.
    그리고 공권력이 세서 조폭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는게 아니라, 필요할 땐 갖다 쓰고 다 쓰면 토사구팽하기 때문에 마치 손을 빌리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거겠죠.
    토사구팽이라곤 하지만, 나름의 입은 맞춰서 서로 편의를 봐주고 있을 테고.
    저는 공권력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릴 땐 경찰이 되는 것이 목표였을 때도 있었지만, 이제와서 그 꿈을 돌이켜보기엔 이 나라 공권력은 너무 많이 부패했어요.
    내가 어릴 땐 왜 그럼 꿈을 가졌지? 하고 후회하게 되는게 요즘 공권력이라 안타깝습니다
  • 유니콘 2012/02/06 23:56 #

    엄밀히 업신여김을 당하는 공권력이라고 해도 정작 한국 내부에서 공권력 수뇌부의 힘을 당해낼 수 있는 집단은 그 어디도 없는게 현실입니다... 한국만큼 법의 통제망이 이 정도로 세세한 곳까지 미치는 나라는 세계에서 그 어디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한국의 정부가 거대한 전국구 조폭의 성향을 짙게 띄던 시절 이미 합법의 힘을 빌려 검찰 수뇌부나 경찰 수뇌부 이런 곳에 박힌 핵심 측근들을 써서 바로 그들 자체가 전국구 조폭(머 공안검사, 법무부, 군대, 경찰 이런 쪽들이 그렇죠...)이었죠... 한국만큼 중앙정부의 실질지배가 강한 나라가 세계에 없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폭들 대부분이 합법장사(ex: 유흥계열, 대부업 등)로 들어오려고 안간힘을 쓰는게 한국이죠... 아예 저런 집단들의 물갈이는커녕 촉수조차도 못 건드리거나 혹은 건드릴 당시의 공권력 내부 요원들의 목숨은 절대 보장할 수 없고 또 합법 불법 눈치조차도 안 보며 돈 만지는 사업을 하고 실제로 성업중인 나라가 훨 많습니다...
  • TokaNG 2012/02/07 00:31 #

    그거야 당연하겠죠. 수 틀리면 그냥 쓸어버리면 그만이니.
    하지만 그 공권력 집행이 무조건 옳은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것도 아니라, 자기들 유리한 쪽으로만 몰고 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법 통제망이 세세한 곳까지 영향력을 끼치는 게 아니라, 자기들 눈에 거슬리면 꼬투리를 잡아서 몰아붙여버리니 튀어나온 못이 멀쩡할리 없지요.

    그리고 본문은 공권력과 조폭의 상관관계에 대한 고찰이 아니라, 단순한 영화 후기입니다.
    덧글이 좀 길어지고 있네요.^^;
  • 올비 2012/02/10 12:54 # 답글

    토깡님 올만입니다 ^^ 저도 지난 주말 이 영화 봤어요 ㅎㅎ 쫌 아쉽네요. 토깡님의 성함을 알 수 있는 기회였을긴데 걍 보내버려서 (응?)
    볼땐 참 재밌는데, 나와서 곱씹을수록 씁쓸한 영화죠 ;ㅂ;
    어찌보면 부러진 화살과 비슷한 맥락의...
  • TokaNG 2012/02/13 22:13 #

    제 이름은 이글루네도 익히 올라와 있습니다.
    조금만 뒤져보시면.. (응?)
    눈썰미가 좋으시면 카톡 아이디까지 찾아낼 수 있으실지도.. (그러면 카톡 트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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