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이를 마주하면... 그냥그런이야기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내가 남자친구들과 있으면 녀석들의 수려한 말빨에 밀려 어버버 하고 당하기만 하는 어리숙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름 여성과의 1 : 1에선 꽤나 재치있고 재밌다는 말도 곧잘 들어왔었는데, 참 이상하게도..
남자친구들과 어울릴 때면 약점을 비집고 들어오는 친구들의 어택에도 변변한 자기변호 하나 못해서 친구들이 들으면 '네가 무슨?' 이라며 콧웃음을 치겠지만, 그래도 여성과 단 둘이 있게 된다면 상대를 지루하게 만들기 싫어서 갖은 재주를 부리면서 떠벌떠벌 말도 잘하고 그로 인해 '생각보다 재밌는 분이시네요~' 라는 칭찬(?)도 더러 들어왔는데 하필이면...

좋아하는 감정이 조금이라도 깃든 이성을 앞에 두면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머릿속이 하얗게 도배되어서 준비했던 멘트들도 싸그리 잊어버리고, 그저 눈치만 살피면서 이따금씩 걸어오는 말에 화들짝 놀라면서 어버버버...
하고 싶었던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재밌는 얘기도 못하고, 남들 앞에서는 잘도 부리던 그 재주는 어디 갔는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응가 마려운 초딩 마냥 불안함과 초조함에 마른 침만 꿀~꺽.
그래서 항상 좋아하는 이를 만나면 '지루해~', '재미없어.', '심심해~~' 라는 말을 하게 한다.

아니, 굳이 만나지 않더라도.. 전화통화만 하게 되더라도 꿀먹은 벙어리.
합죽이가 됩시다, 합!


조금전까진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여자친구와 한 시간을 넘게 신나게 통화를 했으면서도..
평소에는 친구의 고민과 사연을 들어주기만 하다가 오랜만에 대화에 재미가 붙어서 서로 깔깔깔 웃으며 신나게 통화를 했으면서도..

정말 고대하던 사람에게 '통화 가능해요.' 라는 말을 듣고서 마침내 전화를 했을 땐 '여보세요?' 라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더라.
한참동안의 침묵이 어색해서 괜히 무슨 말이라도 해보려고 짱구를 굴려보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말은 없고, 그렇게 불편하고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흐르는 것이 못내 미안해서 '잘자라~' 한마디 하고 뚝. 뚜뚜뚜~
한 시간보다 길게만 느껴지는, 10분도 안되는 짧은 통화. 


정말 평소에는 전화통화를 할 때에도, 메신저로 얘기를 나눌 때에도, 만나서 놀 때에도 상대방이 말이 없으면 내가 어떻게든 말을 걸어서 웃음을 자아내게 했는데, 좋아하는 감정이 조금이라도 깃든 여성을 앞에 두면 뭐가 그리 힘든지 식은땀만 뻘뻘 흘린다.
혹시 이 긴 침묵의 시간이 지루하진 않을까? 하며 눈치를 살피고, 뭔가 재밌는 화제가 없을까 고민하다 보니 혼자 딴생각 하기 일쑤고, 그러다 보니 침묵은 더 길어지고..

차라리 만나서는 얼굴이라도 보이고, 그 표정을 살피면서 어떻게든 하겠찌만 메신저나 전화통화에선 방도가 없다.
얼굴이 안 보이니 표정을 살필 수도 없고, 얼굴이 안 보이니 '그냥, 예뻐서 보고만 있어도 좋네~' 같은 느끼한 멘트로 어색한 순간을 무마할 수 없고, 얼굴이 안 보이니 대화가 아닌 멋적은 표정이나 머리를 쓰다듬는 등의 스킨쉽도 시도할 수가 없다.
침묵의 시간엔 정말로 침묵만 지킬뿐.

그렇게 말 없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상대방의 마음도 멀어지는 것을 뻔히 느끼면서도 어찌 할 도리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른다.
왜 하필 이럴 때 벙어리가 되냐며 스스로를 자책해보기도 한다.


한번은 이런 심정을 땀 삐질 삐질 흘리면서 평소와 같은 유순한 어투가 아닌, 버벅거리는 병신 같은 어투로 겨우 띄엄 띄엄 전하니, '오빠는 의외로 자기 단점은 정확하게 알고있네요?' 라며 신기해 한다.
그리고 알면서 왜 못 고치냐는 투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면 더욱 더 말문이 막히더라
.


그냥 편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때엔 시덥잖은 개그도 쳐가며 얼마든지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데, 왜 하필 더욱 잘보이고 싶고, 더욱 오래 대화를 나누고 싶은, 좋아하는 이성 앞에서만 그렇게 바보 같이 꿀먹은 벙어리가 되는 걸까?
가뜩이나 멍청한 머리가 하필이면 그때 회전을 멈춰서 아무 생각도 안나게 되는 걸까?

좋아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지루한 시간만 보내게 하니 어떻게 점수를 못 따잖아.


그러니까 차이지.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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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에바초호기 2011/07/28 16:29 # 답글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면 툭툭 튀어나오던 말이 기분나쁠수도 있을테니까 조심하고 뭐 그런식이면 점점 과묵해지고 그리되지...나도 숱하게 겪었던거고...그러니 자네나 나나 이 모양인가베;;
  • TokaNG 2011/08/01 12:41 #

    과묵하기만 하면 다행인데..
    정작 할 말은 못하고 쓸데없는 말만 많아지니 큰일일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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