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써니. 그저그런일상들

작은형도 써니를 아주 재밌게 본 모양이다. 오랜만에 괜찮은 한국영화를 봤다면서,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계신 부모님께 어서 가서 보고 오시라며 무료관람권 두장을 건네드린다.
관람권을 건네면서도 써니가 참으로 재밌었다며 정작 극장을 가는 당사자보다 더 신나게 흥분해있다. 그리고 관람권을 받아든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이 보여주는 영화로 즐거운 여가를 보낼 수 있겠다며 저녁을 드신 직후 곧바로 극장으로 향하신다.


그리고 두시간여의 시간이 지났다.

찰칵! 하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부모님께서 영화를 다 보고 돌아오신 모양이다.
현관문이 채 열리기도 전에 문소리를 들은 작은형이 방문을 열고 달려나와 부모님을 반긴다.

"영화 재밌었지요? 진짜 괜찮았지요?"

자신이 적극 추천하며 영화표까지 건네 보여드린 영화가 흡족하셨는지 기대에 부풀어 발을 동동 굴리며 물어본다.
나 역시도 써니를 아주 재밌게 보고, 어머니께서도 참으로 좋아하시겠다 싶어 어머니의 반응이 심히 궁금하던 차였다.
하지만 역정을 버럭 내시며 아버지께서 이르시길,

"무슨 그런 영화가 다 있노! 하나도 재미없더라!!"

뜻밖의 반응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잘 참고 견디지 못하는 불같은 아버지의 성격에, 속으로 삼키지 못하고 겉으로 바로 드러나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거칠게 한마디 하시더라.
예상과는 다른 아버지의 대답을 들은 작은형은 당황해서 순간적으로 얼어버렸다.
나도 방안에서 열려진 문틈으로 들려오는 대화를 듣다가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나가보니 아버지께선 열불이 꽤나 나셨는지 윗옷을 거칠게 벗어던지신다.

작은형이 머뭇머뭇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다시금 여쭙는다.

"써니 재미없데요? 이상한데? 지금 박스오피스 1위인데? 최고로 재밌는 영환데요."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형의 물음에 한마디 보태려는 찰나,

"써니 말고, 헤드!"

라는 아버지의 대답에 또 금방 얼었다.

"써니 안 보셨어요? 헤드는 또 무슨 영화고.."

라고, 다소 어이가 없어 벙찐 표정으로 아버지께 되묻는 작은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뒤늦게 어머니께서 들어오신다.

"아이고~ 그러게 애들 보라는 거 보자 카니까."



씩씩거리며 방으로 들어가신 아버지를 뒤로 하고 뒤늦게 들어오신 어머니께 어찌 된 일이냐고 연유를 여쭈니, 극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써니 상영시간을 조금 넘겨버려서 다른 작품을 보고 오셨단다.
그것이 헤드.
영화소개를 찾아보니 류덕환과 박예진, 백윤식 등이 나오는 스릴러물이다.



"아니, 써니 보라고 영화표를 드렸는데, 왜 엉뚱한 걸 보고 오셔서 화를 내고 그래요."

라며 작은형이 안타까워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엄마 모시고 갈 껄. 나도 써니 한번 더 보고 싶었구만."

"아이고, 그래. 니가 하도 재밌다 케서 우떤가 볼라 켔드마는, 그리 됐삤네."

...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와서 부모님께도 이 재미와 감동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어 작은형이 벌인 소소한 효도이벤트는 그렇게 허무하게 마감되었다.
상영시간에 조금 늦었다고는 하시지만, 기껏해야 5분정도라서 예고편이나 광고, 극장에티켓, 대피요령 등이 나오는 시간이 넉넉하니 충분했을 텐데도, 아버지께선 구태여 아들이 추천해준 써니가 아닌,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영화를 보고자 하셨다가 크게 실망하곤 누구한테 화풀이도 못하고 혼자 열을 내신 거였다.








방에서 잠시 열을 식히고 다시 거실로 나온 아버지께 작은형이 재차 묻는다.

"왜 써니 안 보셨어요. 내가 써니 보라고 표도 드리고 상영시간까지 알려줬구만.

"어, 포스터 보니까 뭔 여자만 우르르 나오데. 그런 영화는 아빠 안 본다."

"그러면 헤드는 왜 보셨어요?"

"거 머시기냐, 백윤식이 나오데. 아빠가 백윤식 좋아하거든. 그나저나, 그런 영화는 난생 처음 봤네. 내, 다시는 한국영화 안 볼끼라."

"아빠.. 한국영화를 안 보실 게 아니라, 앞으로는 내가 추천해주는 영화만 보세요. 괜히 이상한 영화 보지 말고."


방으로 들어가는 작은형의 발걸음이 쓸쓸하게 느껴진다.





덧글

  • pientia 2011/06/01 12:38 # 답글

    아아...안타깝네요. 저도 가끔 부모님이 보실만한 영화 티켓을 드리곤 하는데 영화를 좋아하는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극장에 가시면 거의 주무셔서 저도 좀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뭔가 다른 상황이긴 하지만요.;;; 안타까운 마음은 비슷합니다.;;;(덧글이 좀 삼천포로 빠진듯하네요.;;;;)
  • TokaNG 2011/06/02 19:54 #

    아버지께선 워낙 남자냄새 풀풀 풍기는 액션만 좋아하셔서..
    액션이 아니면 곧잘 주무세요.;;
  • 동사서독 2011/06/01 16:41 # 답글

    울 엄마는 모처럼 만난 엄마 친구들이랑 영화 보러 갔다가 시간 맞는게 없어서 해리포터 그것도 3인가 4인가 ...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잘 사람은 자고 졸 사람은 졸고 했다더군요.
  • TokaNG 2011/06/02 19:54 #

    저런..
    해리포터 시리즈는 저도 보지 않았군요. 당췌 무얼 보고 재밌어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을 정도로 취향을 벗어나서...
  • 봄봄 2011/06/01 21:21 # 답글

    어우...썰어대는거 아닌가요? 그것도 모가지...
    써는거 잘 보지만 이건 저도 패쓰목록이였는데...뜨악하셨겠어요!!
  • TokaNG 2011/06/02 19:55 #

    글쎄요.; 썰어대는 잔인한 물건이었는지는 보지 않아서 잘..
    대충 시놉을 보니 그다지 잔인할 건덕지는 보이지 않던데요?; 모가지를 자르긴 하지만.. (야)
  • 페리도트 2011/06/05 01:25 # 답글

    아 써니 정말 재밌는데 진짜ㅜ재밌고 눈물 쏙 빠지고 재밌는데....
    백윤식씨야 좋은 배우긴하지만 꼭 영화가 재밌다곤 못하는데...아 안타깝네요.
    다음번에 다시 써니 보러 가족들이랑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
  • TokaNG 2011/06/06 02:06 #

    하지만 그럴 일이 있을지..
    챙겨 볼 영화가 너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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