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의 잃어버린 자아 찾기. (써니) 영화애니이야기

과속스캔들로 데뷔부터 대박을 터뜨렸던 강형철 감독의 두번째 작품, 써니.
요즘 극장행이 뜸해서 이것도 DVD로나 볼 수 있겠다 싶었는데, 뜻하지 않게 아는 동생이 영화를 보자고 꼬시길레 못 이기는 척 넘어가서 낼름 보고 왔습니다.

우선은 감독의 전작도 상당히 재밌게 본데다, 여기저기서의 리뷰도 다들 호평이라 은근히 기대를 하면서도, 70년대의 향수를 그렸다는 말에 내가 그 시절의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을까? 싶어 조금은 걱정스러웠는데, 그런 기우는 옆자리 동생의 호탕한 웃음과 함께 깨끗이 날려버렸습니다.

오프닝은 분주하게 유호정이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남편의 출근을 챙기고, 딸이 급하게 등교준비를 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과속스캔들과 느긋한 오프닝과는 다소 반대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은근히 비슷한 연출을 하고 있기에, '결국 거기서 거기인 건가?' 싶었는데, 정신없는 아침을 보낸 유호정이 한숨 돌리며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면서부터 진짜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어머니가 입원해있는 병원에서 우연히 학창시절 친구를 발견한 임나미(유호정)가, 이제 시한부 삶을 살고있다는 친구의 부탁으로 그 시절 패거리를 찾아다닌다는 것이 이야기의 골조.
그 과정에서 이야기는 잠시 70년대의 나미 학창시절로 넘어갑니다.

카메라의 시선이동으로 자연스레 70년대로 타임워프한 나미의 모습은 어린 나이면서도 언제나 맛깔스런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긴 심은경입니다.

전라도 벌교에서 서울로 이제 막 전학온 나미의 어리버리한 모습과, 서울 아이들의 유행에 뒤처질까 신경쓰는 모습, 그러면서도 잘나가는 날라리 패거리의 눈에 잘 들어서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들이 점점 재미있게 그려집니다.
심은경 양의 연기는 두말할 것도 없이 기가 막히고 멋져서, 정말 신들린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정말로 그런 씬도 있고.)
그 특유의 뚱한 표정과, 어버버한 말투와, 발광하는 듯한 몸짓이 정말 연기라기보다는 극중의 임나미가 되어 그때 그 학창시절을 그대로 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임나미를 패거리로 끌어들인 6공주 애들도 다들 예쁘장하고, 개성있게 생겨서 보기 좋네요.
연기도 하나같이 잘해서 학창시절에 저런 애들과 어울렸으면 정말 재밌었겠다~ 하는 부러움마저 느끼게 합니다.
임나미까지 총 7명이나 되는 패거리 멤버 구성원은 다들 개성이 아주 강해서 흡사 소년만화의 캐릭터를 보는 것 같기도 하네요.
영화에서 이정도로 임팩트 있는 개성을 보여준 캐릭터는 그다지 보지 못한 것 같은데..
 
이렇게 70년대 학창시절과 현대를 번갈아가면서 보여주는 이야기속에서, 나미는 점점 잃어버렸던 자아를 되찾게 됩니다.
현실에서는 바쁜 남편이 가족에 너무 무관심하고, 그저 무슨 일이든 함께 해주지 못하고 돈만 척척 꺼내주는 것이 못내 야속하기도 하고, 하나밖에 없는 딸은 자꾸만 틱틱거리며 엄마를 무시하고, 그저 남는 시간을 때울 거리가 없어서 병원에 계신 엄마를 찾아가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는데, 그 병원에서 패거리의 짱이었던 춘화(진희경)를 만나게 되고, 그의 부탁으로 친구들을 찾아다니면서 까맣게 잊고 지냈던 추억들을 다시금 떠올리고, 그때 내가 어떤 아이였는지를 깨닫게 되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저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아줌마였던 임나미가 친구들을 하나 둘 찾으면서 점점 각성하게 됩니다.

25년만에 만난 친구들은, 어떤이는 회사에서 자기몫을 제대로 하지 못해 치이기도 하고, 어떤이는 돈 많은 졸부와 결혼해서 과거를 숨기고 떵떵거리며 지내기도 하고, 어떤이는 시어머니의 눈칫밥을 먹으면서 기가 눌려 지내기도 하고, 어떤이는 꿈도 접은채 비루하게 빌어먹고 있어, 학창시절의 뚜렸했던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삶을 보여줍니다.
그 나이대의 아줌마들의 현실을 다양한 시각으로 한꺼번에 보여주는 모습에  '아..' 하고 현실의 아줌마들을 잠시 동정하게 되는 것 같네요.


70년대의 학창시절에는 특유의 전학생 괴롭히기부터, 어색했던 친구들이 점점 친해지는 모습, 패싸움, 두근거리는 첫사랑, 친구와의 불화, 학예제 등을 당시의 풍경에 맞춰 흥미롭게 보여줍니다.
현실을 그린 아줌마들의 모습에서도 뿜기는 개그컷이 더러 나오긴 하지만, 그들의 학창시절은 정말로 미친듯이 웃겨서 보는 내내 배를 잡고 웃게 하네요.
극장에선 어지간히 웃겨도 소리내서 웃지 않는 편인데, 이번엔 정말 극장이 떠나가라 가득 메운 웃음소리에 저도 모르게 같이 소리내서 깔깔거리며 웃었습니다.
정말 첫 패싸움 때의 그 욕배틀은 두고두고 봐도 질리지 않을 명장면이란..

안타깝게도 한때를 풍미했던(?) 써니 멤버가 다시 한자리에 다 모이진 못했지만, 다시 뭉친 이들은 그동안의 별볼일 없었던 미약한 자신들을 다 던져버리고, 새로이 활기를 찾아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려 합니다.
그들이 처음 만났던 70년대의 그때처럼 서로 의지하고 도와가며 더욱 힘차게..
더이상 그들은 흔한 아줌마가 아니라, 각자의 삶의 주인공으로 거듭납니다.


영화를 주욱 보다 보니, 정말 이런 이야기라면 스크린에서 쉬이 볼 수 없었던 유호정이, 연예활동을 거의 접었다시피 한 홍진희가, 그리고 진희경이, 이연경이 흔쾌히 출연할만도 하겠다 싶었습니다.
아줌마를 이렇게나 멋지게 그려주다니..
그들의 우정을 재미있게, 그리고 마지막엔 훈훈한 감동까지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아낸 강형철 감독의 다음 작품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데뷔하자마자 연이은 히트를 터뜨린 이 감독이라면 다음 작품도 무조건 봐줄 수 있겠다 싶습니다.
각본이나 연출도 재미있지만, 음악 또한 가열차게 잘 써서 눈과 귀가 아주 즐겁습니다. 개구진 영상에 행복한 웃음을 가득 담아내고, 감미로운 음악까지 곁들여서 홀리니, 보고나면 세상이 달라보일 정도로 사람을 들뜨게 만드네요.  
개그센스도 아주 탁월해서 제대로 취향이기도 하고. (정말 그의 미친 센스는 널리 전파되어 마땅합니다.)
 

금새 또 다시 보고 싶어, 벌써부터 DVD가 기다려집니다.


다른 리뷰들을 다시 찾아보니, 70년대를 그린 작품이 아니라, 80년대를 그렸었네요.;
어느 리뷰에서 70년대 어쩌구 하는 문구를 본 기억이 있어서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70년대가 아니라 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70년대생들을 의미하는 문구였나봅니다.;;
어쩐지 보는 내내 나 어릴 때랑 위화감이 전혀 없더라.orz (마치 품행제로를 봤을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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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깡이 窮狀 茶飯事♠ : 아버지와 써니. 2011-06-01 04:40:31 #

    ... 작은형도 써니를 아주 재밌게 본 모양이다. 오랜만에 괜찮은 한국영화를 봤다면서,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계신 부모님께 어서 가서 보고 오시라며 무료관람권 두장을 건네드린다.관람권을 건네면서도 ... more

덧글

  • 봄봄 2011/05/21 09:50 # 답글

    영화소개프로에서 욕배틀장면 봤는데...심은경 연기가 정말 일품이여서
    꼭 봐야지...하고는 아직 못봤어요.ㅠㅠ
    더 기대하게 만들어요~
  • TokaNG 2011/05/21 14:12 #

    늦기전에 가서 보세요~ 이런 건 극장에서 다함께 웃으면서 봐줘야 해요!
    혹시 같이 볼 친구가 없다면 저를 부르셔도 됩니다? ㅋㅋ
  • 봄봄 2011/05/21 14:40 #

    또 보고싶으신거로군요?!ㅋㅋ
  • TokaNG 2011/05/21 14:42 #

    네. ㅋㅋ
  • 동사서독 2011/05/21 13:28 # 답글

    원빈 닮은 삼수생 남자도 멋지고 민효린도 정말 이쁩디다. 어릴 적부터 각종 하이틴 잡지 모델하며 배우로도 활약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얼굴에 상처나서 일찍 연예 활동을 접은 조용원 누님이 생각나더군요. 막판에 짠~ 등장하는 그분도 포스 대단.

    본드걸 연기도 참 좋았었지요. 실제로 그런 막나가는 애랑 같은 반에 있으면 ㄷㄷㄷ하겠지만. 막나가는 년놈이 지랄 발광하고 있을 때는 함부로 곁에 가지 말자는 교훈을 주더군요.

    이연경 씨 아역으로 나오는 배우도 깜찍하고 좋았습니다.

  • TokaNG 2011/05/21 14:14 #

    글로 다 적진 못했지만, 정말 주옥같은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필모를 보니 이 작품이 첫작인 애들이 대부분이던데, 어찌 그리 연기들을 잘하는지..
    저는 민효린 빼곤 모든 애들의 연기가 다 맘에 들었습니다.
    민효린은 그야말로 얼굴마담인 격이라 연기따윈 개나 줘버려! 라는 느낌? ㅜㅡ

    저는 패싸움 할 때 상대패인 소녀시대의 짱이 좀 취향이더군요.
  • 동사서독 2011/05/21 14:35 #

    ㅋㅋㅋ 요즘 민효린 + 성유리 때문에 KBS '로맨스타운' 꿋꿋이 보고 있다는.
    핑클 성유리, 써니 민효린에 꼭지 박지영... 얼굴만 봐도 행복해지는 시간.
    감독판에는 민효린과 여학생 몇 명이 동성애 관계였다고 하네요. 짱과 그렇고 그런 관계. 짱이 전학생을 좋아하니까 전학생을 질투. 이후에는 소주 빨면서 전학생과 화해. 전학생과도 그런 관계?인데 헤드폰 끼고 다니는 잘 생긴 오빠에게 꽂혀서 일탈.

    그건 그렇고 삼수생 신분에 공부는 안하고 놀러만 다니면서 미성년자 꼬시면서 반반한
    얼굴값하던 그 청년의 성인 역할을 미성년자와 거시기한 죄로 콩밥 먹은 배우가 하는 것이 ㅋㅋ 군대 가게 되면 군악대로 가겠다고 말했다가 느닷없이 삼대독자라서 군면제라고 자기가 한 말을 뒤집고 지조도 없이 이 여자 저 여자 헤드폰 씌어주며 연애질.
  • TokaNG 2011/05/21 14:42 #

    와우~ 그 드라마는 정말 주연들의 연기력은 기대도 못하겠네요.;
    거기다 김태희까지 플러스되면 가히 대박~! (야)

    어째 그런 면이 안 보이진 않더군요.
    역시 여고생 패거리중엔 그런 삘의 아이들이 한둘은 있어줘야 더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여고에 다니는 친구의 얘기를 듣다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동성애를 즐기는(?) 여고생들이 많다는 사실에 경악했던 기억이.;;

    저도 그 사람의 등장에 깜놀했습니다.
    왠지 느낌상으로는 배철수가 어울릴 것 같았지만.. 나이대가 맞지 않겠죠?; (배철수는 꽃미남이라고 하기에도 조금 무리가 있고.;;)
  • 동사서독 2011/05/21 16:31 #

    ㅋㅋㅋ 그 성유리, 민효린, 박지영이 무려 '식모'로 나온다지요.
    은근히 농염한 몸매의 이경실도 그 드라마에서 식모... 캬악 ~

    소설 <B사감과 러브레터>에서 보듯 남자와의 관계는 단속당하다보니 여성들끼리의 자매애가 묘하게 동성애처럼 발전되는 분위기가 있지요. 일종의 중간 단계랄까. 선머슴처럼 생긴 여자애가 초콜릿 세례를 받는다든지 러브레터가 쌓인다든지 그런 일화들도 있구요.

    <빨간머리 앤>에도 보면 문학소녀 '앤'이 늘 붙어 다니는 여자친구와 함께 중세의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 를 연기하면서 감정에 몰입되는 장면이 있는데 (그러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 그런 것 역시도 넓게 보면 '소녀'의 성장 과정에 있어서 (일종의) 레즈비언 문화를 거쳐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훗날 길버트와 보편적인 이성애를 갖게 되는 것처럼 대부분은 그냥 그렇게 커가겠지요.
  • TokaNG 2011/05/23 19:45 #

    저런...
  • 유아틱 2011/05/21 20:39 # 답글

    갑자기 저희 어머니의 학창시절은 어땠을지 궁금해집니다.
    아직 전 보지 않았죠ㅠㅠ
    부모님과 함께 봐도 좋을 영화 같군요!
  • TokaNG 2011/05/23 19:46 #

    극장에서 내리기 전에 어머님 손 잡고 함게 보시는 겁니다!
  • 지크 2011/05/22 00:18 # 답글

    우와 ㅠㅠ 크크크크
    저 네번째 사진의 70년대 풍 복장...완전 웃기네요. 은근히 옛날 복장 고증 나는데요... 저 시대의 앞밑위 완전 길고 허벅지 넓은 칠부바지에 촌티 작렬 ㅠㅠ
  • TokaNG 2011/05/23 19:47 #

    하지만 당시에는 촌스럽기보다는 세련되 보였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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