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소년. 만화책☆이야기

아키라의 해적판 만화중에 이런 책도 있었습니다.

아키라가 국내에 '폭풍소년'이라는 타이틀로 아주 잠깐 개봉한 적이 있었는데(당시엔 일본문화가 개방되기 전이라 일본애니라는 것을 알고는 황급히 내렸지만), 그 네이밍 센스를 물려받은 것인지, 무려 '태풍소년'입니다.;

도은문화
라는 듣보잡 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은, 물론 카네다나 데츠오 등의 일본식 이름은 가이, 타오 등으로 바뀌었고, 신도쿄라는 지명은 배제된채 아시아의 어딘가로만 묘사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아키라 해적판들이 원작의 두꺼운 분량을 잘게 잘게 나누어서 10권에서부터 15권까지(가장 보편적인 것이 한권을 둘로 나눈 12권짜리이긴 했지만) 늘려서 낸 반면, 태풍소년은 원작과 같은 6권으로 끝을 맺은 알흠다운[;;] 녀석이긴 합니다.
책의 판형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맞먹을 큰 판형이었던 것을 국내 단행본 사이즈에 맞춰 작게 줄여 내느라, 가뜩이나 두꺼웠던 책들이 더욱 두껍게 느껴집니다.
무려 권당 380p에 달하는 분량이었으니..

1994년에 발행된 이 책의 품질은 말할 것도 없이 최악이지만, 당시에는 이거라도 어디야 싶어서 감격하며 샀었습니다.ㅜㅡ
1994년에 발행되었고, 정가는 3800원이라고 적혀있지만, 제가 산 것은 2000년이던가? 여하튼 그때 즈음. 보수동 헌책방의 2층 창고에 오래도록 방치되어 곰팡이가 핀[..] 책을 권당 1천원에 샀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책을 가져왔을 땐 책장을 넘길 때마다 곰팡이냄새가 풀풀 올라와서 한동안 햇볕에 바짝 말려 곰팡이를 좀 죽인 후에야 겨우 볼 수 있었..

보시는 바와 같이 표지 디자인도 구리지만, 저 오래되고 두꺼운 책이 제본도 엉망이라 아무리 조심스레 보려 해도 쩌억쩌억 갈라지고 난리가 아닙니다.
물론 책이 갈라지는 것은 습한 곳에 오랫동안 방치되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제본 탓이 없지도 않단..

인쇄는 종이만 질이 안좋은 똥종이를 썼다뿐, 꽤나 잘 되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요즘 것들처럼 판이 어긋나 흐려지거나 새까맣게 타거나 하얗게 날아가진 않으니), 효과음 수정이라던지, 간판 등에 그려진 글자수정을 어설프게 처리하거나, 아이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 약이라던지 과격한 총기류, 잔인하게 터져나오는 피 등을 화이트로 거칠게 지워버려 미간을 찌푸리게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번역이 개판이라 대사가 서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내용이 공중에 붕 떠버리는 느낌이란..;;

하지만 해적판으로써의 저런 단점들을 차치하고라도, 작품 자체는 애니와 마찬가지로 상당한 퀄리티라 오만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충분히 볼만합니다.

이정도 정교한 그림들이 아주 빼곡히 이어지는 모습만 봐도 입이 쩍 벌어지고, 이야기를 전개해가는 연출력 또한 일품이라 각종 만화작법서에서도 참고자료로 흔히 내세워질 정도입니다.
특히나 운동선을 전혀 쓰지 않고 인물의 동세만을 살려낸 그림으로 아주 정적이면서도 운동감 넘치는 연출을 표현해, 이후 여러 작품에서 비슷한 연출이 오마쥬되기도 합니다. 

인물은 요즘의 미형캐릭터에 비하면 다소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그림체지만, 인체비례에는 아주 충실한 리얼한 그림으로 작화의 사실감을 높이고, 미래세계의 각종 기괴하면서도 다이나믹한 메카닉 디자인 또한 일품이라 책장을 넘기고 새로운 메카닉이 나올 때마다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그리고 하늘을 찌를 듯이 빼곡히 올려진 빌딩들은 수도 없이 나오는데, 각 장면마다 너무나도 디테일한 표현에 배경 교과서라고도 불리울 정도.

 그림도 그림이지만, 각종 표현들 또한 참신하고, 또 어떤것은 정석에 가까워서 그림만 봐도 공부가 될 것 같은 책입니다.

그중에서도 이런 지그재그로 꺽이는 자선은 다른 만화들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탁월한 기법으로, 처음 봤을 땐 그 참신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습니다.
그전까진 자선이라는 것은 오로지 반듯하게만, 그리고 끝을 날카롭게 살려 색을 다양하게 잘 살려내는 것으로만 생각했었는데..
흑신에도 저것을 응용한 자선이 종종 들어갔었습니다.


이렇게, 아키라라는 작품은 내용은 제껴두고 그림만 봐도 볼 거리, 배울 거리가 많은 수작이라, 정말 제대로 잘 뽑힌 정발본을 염원하게 됩니다.

내용은 워낙 어렵기도 하고, 다시 읽으려니 너무 두꺼워 엄두가 안 나기도 하고, 다시 읽어도 의미전달도 잘 안되고 해서 언급할 수가 없지만, 결말은 궁금해서 마지막을 슬쩍 보니 카네다들이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는 모습으로 끝을 맺네요.
두시간 남짓의 시간에 우겨넣은 극장판보다 훨씬 상세하고 흥미롭게 잘 풀어내서, 번역에 오류가 좀 있더라도 읽어보면 재밌긴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작품이 일본에서는 무려 1980년대에 나왔는데...

아마 지금도 이 비슷하게 훙내내라고 해도 무리이지 싶습니다.;;
오오토모 가츠히로 이 양반은 괴물이란..ㅇ<-<

덧글

  • Saga 2011/04/21 06:33 # 답글

    정말... 생각해 보면 이 작품만큼 해적판이 다양하게 나왔던 만화도 드물죠. 제가 본 것도 한 6종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정발이 안 나오는 신기한 만화... 아니 이해는 가지만...
  • TokaNG 2011/04/21 21:58 #

    그렇죠?
    드래곤볼도 꽤나 다양한 해적판들이 즐비했지만, 아키라도 만만찮은 것 같습니다.
    드래곤볼이야 대중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니 그렇다 쳐도, 아키라는 국내에선 꽤나 매니악한 작품일 텐데..
  • 동사서독 2011/04/21 08:53 # 답글

    오옷... 레어다. 레어.

    내 방에 김형배 화백의 <우주의 레이더스>, 마스모또 레이지의 혹성로봇 스타에이스 있으니 필요하면 말하시길.
  • TokaNG 2011/04/21 21:59 #

    오~ 혹성로봇 스타에이스 좋네요!
    그 당가도 에이스랑을 다른 작품인가요? 당가도 에이스가 국내명이 스타에이스였는데..
  • 동사서독 2011/04/21 22:05 #

    당가도 에이스 맞습니다. 그런데 로봇 변신은 하지 않고 조종 훈련만 X뺑이 치는 과정이라서 실질적인 혹성 <로봇> 당가도 에이스는 보이지 않는다나 뭐라나... ㅋㅋ
  • TokaNG 2011/04/21 22:16 #

    저런.. 그렇군요.
  • 알맹 2011/04/21 09:35 # 답글

    저도 같은 해적판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이북스판 해적판도 어쩌다가 구하게 되었는데, 해적판 중에서는 퀄러티가 개중에 가장 낫더군요. 그대로 역시 아키라는 원판의 큰 판형으로 시원시원하게 보는게 제일 좋죠.
    저도 어디서 들은 풍문으로는 아키라 정발을 하려고 했는데, 국내에 범람하는 해적판에 열받은 오토모 감독이 "한국에는 절대 정발 라이센스 안줘!!"라고 해서 올스톱됐다고 하더군요 ㅠㅠ
  • TokaNG 2011/04/21 22:01 #

    아, 하이북스 해적판은 나올 당시에 살까 말까 무지 고민하다가 그래도 나중에 정발되겠지 싶어 애써 참았는데, 여태 정발이 안될 줄 몰랐습니다.ㅜㅡ
    그거라도 사둘껄 그랬네요.;ㅅ;

    하긴, 그런식으로 국내 정발본을 스톱시킨 작가가 한둘은 아니죠.;;
    우리나라 해적판, 스캔본은 정말 혀를 내두를만 합니다.;;
  • 봄봄 2011/04/21 10:52 # 답글

    오!! 배경이 굉장히 정교하군요!!
    애니는 한번 봤는데(어려워서 내용이 기억안나지만 ㅠㅠ)
    만화책이있다는건 처음알았군요..
  • TokaNG 2011/04/21 22:03 #

    원래 만화책이 원작이지만, 말했다시피 정발이 되지 않고 해적판으로 은밀하게(?) 돌아서 아는 사람만 겨우 아는 정도일 겁니다.;
    애니는 학창시절부터 10수번은 봤는데, 그래도 그냥 뜬구름만 잡는 정도에요.;ㅅ;
    원작을 제대로 보고 싶은데 볼 방법이 없..ㅜㅡ
  • 리크돔 2011/04/21 13:25 # 답글

    만화책도 있을 줄이야!!
    애니도 못 봤는데!!

    하지만 사고 싶은 목록에 적어놓고 잊어버리겠지...lllllorz
  • TokaNG 2011/04/21 22:04 #

    애니는 제방에 복사테잎 두개, 복사DVD 하나, 정발 DVD까지 총 4개 있습니다.
    언제 부산 오시면 하나정도는 넘겨드리겠습..
  • 유아틱 2011/04/21 19:56 # 답글

    구도와 연출을 보면 정말 교과서!
    역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으아아아ㅠㅠ...
    눈을 반짝반짝거리며 정독했습니다.
    이렇게 보니 더 보고싶습니다...
    정발은 어떻게 진짜 안될까요
  • TokaNG 2011/04/21 22:04 #

    정발은 거의 포기고, 원서라도 사고 싶습니다.;ㅅ;
    이미 내용보다는 그림이 더 시급합니다?
  • 지크 2011/04/22 22:40 # 답글

    두께 정말 장난 없군요! 근데 우리나라 만화책은 똥종이 쓴느것좀 어캐 해주면 안되는지...
    몇년만 지나면 종이가 낡고 세균이 득실거리니 원..
  • TokaNG 2011/04/23 02:22 #

    우리나라도 해적판이 아니라면 똥종이까지는 쓰지 않습니다.;
    단행본 종이질은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비슷비슷해요.
    다만 인쇄의 차이 때문에 일본 단행본이 더 좋아보일 뿐이지.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블랙)

46146
1025
2139203

google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