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라. 영화애니이야기

이 작품을 언제 처음 접했더라?
국민학교 3학년 때였나, 4학년 때였나.. (88년에 만들어져서 89년에 세계로 뻗어나갔다니 아무래도 4학년 때겠다.) 동네에 아주 허름한 복장의 아저씨가 창고같이 지저분한 단칸방에 잠시 살았던 적이 있었다.
동네 어른들이 정체불명의 위험한 사내라며 어울리지 말라고 쉬쉬하던 때에도 우리엄마는 반장이라 같은 동네에 사는 그 아저씨와 왕래가 조금 있었는데, 와중에 어머니를 통해 내가 만화를 아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는 비디오 테이프를 하나 쥐어주시더라. 그게 바로 공테이프에 복사된 아키라였다.

TV에서 하던 만화는 당연히 다 우리나라 만화라고 생각하고, 비디오로 보던 만화들도 다 한국어로 더빙이 되어있어 일본만화라는 인식이 없을 무렵에 처음으로 한국어가 아닌, 새로운 언어가 더빙된 만화를 접하게 되어 마냥 신기했다.
그리고 그 언어가 일본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만화로는 처음으로 그 흥건한 피들을 보게 되었을 때, 처음으로 여자의 가슴을 보게 되었을 때 '일본만화는 다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역시 외국만화는 다르구나..' 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외국은 무서운 곳이구나 라는 생각도 함께 들더라.
어린 나이에 데츠오가 보는 환각들은, 후반의 데츠오의 폭주는 너무 무서웠거든. 그래서 그런 것들을 서슴없이 만화로 표현해내는 외국이 무섭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뛰어난 그림과 화려한 색에 반해서 무섭지 않았던 부분만 골라서 몇 번이고 봤던 작품, 아키라.
나중에 아저씨가 동네를 떠나게 되어 어머니께서 돌려주라고 하실 때까지 참 징하게 돌려봤었다. 자막도 없어서 내용도 모르는 만화를..

아무것도 모르던 국민학생 때는 그저 신기한 외국만화일 뿐이었던 아키라는, 고등학생 땐 이미 전설적인 작품으로 회자되고 있었다. 그 어린시절의 강렬했던 인상 때문에, 고등학생 때, 한창 친구들과 복사테이프를 돌려볼 때에도 가장 애타게 찾았던 아키라를 DVD로 다시 보았다. (물론 아직 학창시절에 구해둔 복사테이프가 자막, 비자막으로 두개나 있고, 그것들도 수십번이나 돌려보았지만..)


이미 만들어진지도 20여년이 훌쩍 지난 이 작품은 지금 봐도 그 기술력이나 연출력이 떨어짐이 없이 화려하다.
그림이 멋지고 색이 화려하지만 조금은 무서웠던 이 작품은, 머리가 굵어져서 다시 보았을 땐 어릴 땐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많이도 보이더라.
단순히 그림을 잘그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다른 만화보다 움직임도 더 정교하고,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대피하는 장면에서 그 많은 엑스트라들이 각기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는 것.
당시의 만화라면 군중씬에선 집단이 같은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렇게나 다이나믹한 움직임을 보이는 군중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화려한 색들은 물감으로 나타낼 수 있는 한계치에 가깝다는 말에 또 한번 놀라게 되고..

내용은 몇 번을 봐도 어려운, 꽤나 난해한 작품이었지만 이미 그 기술력만 해도 사람들이 혀를 내두르더라.
그리고 초반의 핵폭발 씬이라던지, 폭주족들의 바이크 질주씬은 정말 멋지다. 그리고 카네다가 타고 다니던 붉은 바이크는 아직까지도 최고의 디자인이라며 추앙받는 머신.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 봐도 여전히 내용은 난해하지만, 간단하게 풀자면 카네다에게 열등감을 느끼던 데츠오의 반란정도.. 일까?
아니, 그보다 크게 보자면 절대에너지, 곧 신의 힘을 제어하려다 역관광 당하는 인간의 오만함(?)을 그려낸 거라고 볼 수 있지만, 그 선두에 카네다와 데츠오를 내세웠다.
어린 시절부터 카네다의 보호를 받으며 그의 뒤를 따르던 데츠오가 조금씩 열등감을 느끼며 카네다의 자리를 넘보는 와중에 생긴 사고로 뜻밖의 힘을 얻어 자신의 우월함을 알리려 하다 역시 카네다에게 저지당한다.
어떻게 보면 이런 단순한 대결구도로도 볼 수 있지만, 이들 주변에 그려진 상황이라던지, 타카하시, 키요하 등의 '힘'을 가진 아이들과 그들을 제어하려는 군대, 그것에 대항하는 저항군 등이 좀 더 큰 그림을 그려낸다.

안타깝게도 원작의 방대한 스토리를 두시간 남짓의 애니메이션에 우겨넣느라 많은 설명이 생략되어 더욱 난해해졌지만, 그래도 아주 간단하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얼추 전달하는 듯 하다.
원작에선 꽤나 높은 비중을 차지하던 폭주족 두목 크라운이라던지, 저항군들을 이끌던 무녀(? 교주??)가 거의 듣보잡에 가까운 엑스트라로 나오긴 하지만, 그리고 정작 작품의 타이틀이 되는 아키라는 그 실체를 드러내지 못하고 회상씬이나 환각 등으로만 그려지지만 최대한 주요내용을 어필하려고 애썼다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의 원작이 어서 국내에도 정발이 되어야 할 텐데..
그간 하이북스라던지, 별의 별 다양한 출판사에서 해적판은 무수히 쏟아졌지만, 정작 메이져 출판사에서 제대로 판권을 들여 낸 책은 아직 보지 못했다.
별 시덥잖은 만화는 다 들여오면서 이런 걸작은 왜 여태 단 한차례도 정발되지 않은 건지..
태풍소년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그야말로 해적판중에서도 초허접 싸구려 해적판으로 가지고 있긴 하지만, 항상 정발판이 아쉽다.
이놈의 해적판은 인쇄 이런 건 둘째 치고, 번역이 개판이라 내용 전달이 불가능할 정도거든.;



사이버펑크 애니메이션으로써는 한 획을 그었다고도 할 수 있는 아키라, 몇 번을 봐도 징그러운 장면은 어전히 징그럽고, 무서운 장면은 여전히 무섭지만, 그래도 정말 명작이긴 하다.
이 작품으로 인해 바이크에 흥미를 가진 친구들도 많았고, 이 작품의 카네다를 우상으로 삼는 친구도 더러 있었다.
여태 많은 감독들에게 영감을 주고, 많은 사람들에게 걸작으로 회자되고, 아직도 그 아성을 지켜내고 있는 멋진 작품이다.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다지만..[...]



아,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하고 싶었던 말이 더 많았는데, 잡설만 길어지고 말이 자꾸 꼬여서 횡설수설하다보니 다 쓰지도 못하겠다.;
한번 더 보면 생각이 다시 정리가 되려나.. 


덧글

  • JOSH 2011/04/21 00:09 # 답글

    애니 인생 거의 처음부터 본 작품이 아직도 퀄리티로는 베스트에 들 정도이니
    확실히 80년대말까지가 일본 극장애니의 황금기 였네요.
  • TokaNG 2011/04/21 03:27 #

    정말 본격 아니메로는 처음으로 접한 녀석인데, 이후로도 이것보다 뛰어난 퀄리티의 작품을 본 것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셀식 애니메이션으로써는 정말 최고인 것 같아요.
  • REDBUS 2011/04/21 00:50 # 답글

    저희과에선 안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거의 교과서(?)적인 작품.

    하지만 전 안봤음요. 교과서는 워낙 싫어해서..(?)
  • TokaNG 2011/04/21 03:29 #

    저런.. 아키라는 애니 뿐만 아니라, 만화책도 한없이 교과서에 가깝습니다?
    그 탁월한 데생력과 연출력은 가히 본받을만 하단...
  • REDBUS 2011/04/21 04:52 #

    그것도 교과서로 추앙받는데 구하기도 어렵고해서 역시 하나도 아노밨음요
  • TokaNG 2011/04/21 06:11 #

    정말이지, 그런 걸작이 왜 여태 정발이 안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차라리 원서라도 구하고 싶은데, 그 마저도 여의치 않으니..ㅜㅡ
  • tokang님에게 2011/04/21 13:48 # 삭제

    원작자인 가츠히로가 정발판을 내는것을 반대한다는군요
    심지어 과거에 미국에서 내줬던 판권을 자기가 나중에 다시사서 정발판을 회수, 내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자세한거는 엔하위키로 가셔서 아키라 편을 찾아보시면 됩니다.
  • TokaNG 2011/04/21 22:06 #

    저런.. 왜 그런 짓을..;ㅅ;
    해외 정발본이 뭐가 맘에 안 들었던 걸까요?;;
    나중에 찾아봐야겠네요.
  • Saga 2011/04/21 07:18 # 답글

    아마 계약비용이 굉장히 비싸다거나(네임밸류가 있으니), 혹은 국내에서 매니아 외의 수요층이 얼마나 있을지 알 수 없다든가, 이 명작을 제대로(번역, 제책, 인쇄 등 모든 요소를 포함해서) 내지 못했을 경우 들어먹을 욕이라든가... 정발이 안 나오는 이유는 몇 가지 짐작을 하겠지만, 그래도 아쉽기는 아쉽죠.
    제가 일하는 출판사에서 낸다면 기꺼이 제가 번역하겠습니다만!!! -ㅁ-
  • TokaNG 2011/04/21 22:09 #

    의외로 네임밸류가 있다 해도 계약비용을 터무니없이 부르는 작가는 거의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냥 가져갈 테면 얼마든지 가져가라는 작가의 사례도 들었습..
    아마도 해적판이 너무 판을 쳐서 빈정상해서 그랬다는 말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아요.;;
    해적판이라도 볼 수 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었..;;;
  • 봄봄 2011/04/21 11:10 # 답글

    분명..고딩때 봤는데 왜 내용기억이 안나나...했더니
    다른분들에게도 어려운 내용이였던거군요!! ...잠시 저의 머리를 원망했더랬습니다-_-;;
    근데 저는 다시봐도 내용 이해못할듯...ㅠㅠ
  • TokaNG 2011/04/21 22:10 #

    원작의 방대한 스토리중 일부를 각색해서 재현한 것이니까요.
    아무래도 몇 번을 봐도 자세히 알기는 힘들지 싶습니다.;;
  • 리크돔 2011/04/21 13:28 # 답글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아키라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꼭 봐야지~ 하면서도 여태 한 번도 안 봤다는...
    =_=;;;;;;;;;;;;;;;;
  • TokaNG 2011/04/21 22:10 #

    으아니~ 이 명작을 아직 안 보셨다니!!
  • 솔직히 2011/04/21 13:47 # 삭제 답글

    영상미는 매우 뛰어났으나 원작 코믹스의 방대한 내용을 극장판으로 축약시키다보니 스토리 라인은 굉장히 부실한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코믹스를 먼저 본 사람이 극장판을 보면 많이 실망하죠.
  • TokaNG 2011/04/21 22:11 #

    꼭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대체로 원작이 있는 극장판의 경우 원작의 팬을 충족시키기란 하늘의 별따기죠.;
    퀄리티면에서야 다들 납득을 하겠지만, 내용면에서는 아무래도...
  • 포터40 2011/04/22 00:17 # 답글

    96년도쯤 동아리 선배가 비디오로 보여줘서 첨 봤는데, 어찌나 충격적이었던지...ㄷㄷㄷ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영상은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네요~
    어쨋든 가네다 바이크는 정말 포풍간지!!!!-ㅂ-)b
  • TokaNG 2011/04/22 14:24 #

    열살짜리 꼬꼬마의 머리에도 깊이 각인된 영상이었으니까요.
    정말 그 화려한 영상은 한번 보면 쉬이 잊혀지지 않아요.

    포피니카혼 카네다 바이크를 갖고 싶었는데..ㅜㅡ
  • 아아아 2011/11/12 11:14 # 삭제 답글

    제가 노인z, 스팀보이, 네오도쿄 등 오토모가츠히로 작가님 작품을 여러개 봤는데..
    오토모는 찬밥이고 백날 미야자키 하야오만 찾으니
    (절대 미야자키 하야오감독님을 욕하는게 아닙니다 그사람작품도 재밌게 보고있습니다)
    지금 한창 만화에 빠져있을 중딩들에게 물어보면 "그건또 뭔 듣보잡이냐 블리치같은 명작을 보라고" 이럴 게 뻔하죠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제발 오토모 감독님이 대중성도 얻으시길 바랍니다


    물논 전 아키라 애장본을 갖고계신 학원 선생님이 계시기에 만화도 봤져..ㅋㅋ
  • TokaNG 2011/11/12 11:44 #

    스팀보이는 DVD를 아직 사지 못해서 제대로 본 적이 없습니다.ㅜㅡ
    케이블에서 해주는 것을 잠깐씩 보면서 사야지 사야지 생각하면서도 DVD 자체를 사본지가 어언..;;
    다른 작품들은 국내에선 구하기 힘든 작품이고.;;

    저도 미야자키 하야오보단 오토모 가츠히로나 오시이 마모루 팬입니다. 최근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을 몇 봤는데, 취향과는 좀 동떨어졌더군요.;

    만화책은 저도 일본에 거주중인 친구덕에 손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글자를 몰라서 읽질 못해.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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