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서 그래요. 그저그런일상들

한 남자가 지하철을 탄다.
대낮부터 술이 거하게 취했는지 눈에 초점은 없고 다리는 풀려서 비틀거리고 얼굴에는 붉게 홍조가 들었다.
비틀거리며 객차를 가로지르던 그가 한쪽 구석에 봉을 잡고 서더니 갑자기 입고 있던 점퍼와 츄리닝 윗도리를 벗는다.
그러더니 우렁차게 한곡조 뽑으며 신나게 몸을 흔들어 춤을 춘다.
무슨 노래인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구성진 트로트다.

꼬부라진 혀를 굴리며 노래를 부르던 그가 갑자기 노래를 멈추고 춤도 멈추더니 봉을 잡고 몸을 지탱하며 외친다.

"어머님, 아버님들, 누님, 형님, 동생들 미안합니다~"

자신의 행태가 남들에게 좋지 않게 보일거란 걸 아는지, 느닷없이 큰소리로 사과를 하더니 다시금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그전까진 인상을 찌푸리며 못마땅해하던 어르신들도 이제는 껄껄 웃으며 쳐다본다.
젋은 사람들 역시 신기해 하며 쳐다본다.

그러다 또 춤과 노래를 멈춘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제가 술이 깨고 싶은데, 술이 안 깨요. 이거 어떡하면 좋죠?"

그러더니 또 노래를 흥얼거리고 춤사위를 벌이다가,

"여러분, 제가 외로워서 이래요. 너무 외로워서 죽겠어요. 죽기 싫은데 죽을것 같아요."

라며 외친다.



그리 나이가 많아 보이지도 않는 사람이, 얼마나 외로워야 대낮부터 술이 취해 미치는 걸까?
외로워서 술에 취하는 걸까, 술에 취해서 외로운 걸까?

웃기지 않는데, 자꾸만 웃음이 난다.

그렇게 웃다 보니 어느새 내릴 때가 되었다.
그 사람도 내린다.
외국인이 함께 내린다.

"웰컴 투 코리아!"

라며 크게 인사를 하자 외국인이 엄지를 치켜세운다.



지하철엔 재밌는 사람이 참 많다.
시끄럽게 난동을 피운것 치고 이렇게 귀여운 사람은 처음이다.

취객의 난동에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다.

덧글

  • 쥐나 2011/03/28 03:25 # 답글

    "어머님, 아버님들, 누님, 형님, 동생들 미안합니다~"

    할 때 잡상인인 줄 알았는데...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웰컴 투 코리아 잘했숑!! ㅎㅎㅎㅎㅎㅎㅎㅎ
  • 윤윤 2011/03/28 12:50 #

    잡상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맞다 우리나라 지하철엔 잡상인이 있었죠 ㅋㅋㅋㅋㅋㅋ >ㅁ<
  • TokaNG 2011/03/28 19:19 #

    아, 그 말은 제가 한 게 아니라, 그 취객이 했습니다.
    함께 계단을 오르는 중이었는데,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계단만 아니었다면 허그라도 할 기세였..

    어제 본 지하철 잡상인은 수입이 꽤나 짭짤하더군요.
    행운의 공이라는, 튕기면 불이 반짝반짝 들어오는 고무공을 파는 아저씨였는데, 저는 잡상인이 한 객차에서 그렇게 많이 파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 봄봄 2011/03/28 10:49 # 답글

    실연당하셨나...? 아님 다른 외로움인가요?
    근데 전 왜 지하철만 타면 변태들만 볼까요?
    이쁜얼굴도 아닌데...왜 저한테만 붙는건지...저도 의문인...
    아저씨 귀엽네요ㅋㅋ
  • 쥐나 2011/03/28 16:47 #

    초면에 죄송합니다.

    저도 어느 날 서울 지하철 거지같이(...) 하고 탔는데 그 날 두 명 붙었어요.... ;ㅁ;
    힘내세요. (그런 넘들은 잘라버려야 합니다)
  • 봄봄 2011/03/28 16:50 #

    죄송하긴요^^

    흠...저는 나이든사람들 취향인가봐요ㅠㅠ
    아저씨들만 붙어요...
    총각들은 어디가고...췟...힘내자구요!!
  • TokaNG 2011/03/28 19:24 #

    얼굴이나 행색을 보면, 안타깝게도 실연을 당하기도 힘든 사람이었습니다.
    대체로 그런 사람들은 애초부터 안 생기..[...]

    지하철의 변태들에 대해선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orz
    왠지 같은 남자인것만으로도 제가 죄송스러워지는 기분..ㅇ<-<
  • 쥰쥰 2011/03/28 17:47 # 답글

    아,귀엽고 웃긴 가운데 왠지 짠하네요...
    얼마나 외로우면 대낮부터 깨고 싶어도 못깰 정도로 술을.ㅜㅜ
  • TokaNG 2011/03/28 19:25 #

    그러게 말입니다.ㅜㅡ
    그정도 끼를 가졌으면 차라리 개그맨이 되어 인기빨이라도 세우는게 좋겠다 싶을 정도로 재밌는 사람이었는데..
  • pientia 2011/03/28 18:39 # 답글

    오... 공감 100% 외로워서 술에 취하는 걸까, 술에 취해서 외로운 걸까? 둘다 맞는 말입니다. 저는 오늘 집에서 과메기에 막걸리 한잔 하고서는 우호호 하고 있지요.

  • TokaNG 2011/03/28 19:26 #

    아이쿠, 혼자 마시는 술은 정말 외로움에 사무치게 하죠.;ㅅ;
    제가 딱 한번 혼자 술을 마신 적이 있는데, 답지 않게 눈물이 줄줄 흐르더란..ㅠㅠ
  • pientia 2011/03/29 15:37 #

    저런..;;; 토닥토닥
  • TokaNG 2011/03/29 18:20 #

    옛날 일이니까요.
  • 슈나 2011/03/28 19:55 # 답글

    으허허 저런건 참 화내지도 못하겠네요 ㅎㅎ
  • TokaNG 2011/03/28 20:22 #

    화를 내기 보다는, 재밌고 귀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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