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과 우리 아부지. 그저그런일상들

며칠전에 인터넷으로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
내 앞으로 온 택배상자를 들고 들어오시는 아버지께서 상자를 건네며 뭐냐고 물으시기에 '책이요.' 라고 하니 무슨 책인지 뜯어보라 하신다.
왜 택배의 내용물이 그렇게 궁금하실까..

당신께서 수령하신 택배상자는 수신인이 누구든지간에 우선 발기발기 뜯어서 내용물을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신다.
마침 수신 당사자인 내가 집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집을 비웠다면 상자는 커터칼로 입구만 조심스럼게 갈라지지 않고 사지분해가 되었을 테다.
예전에 어머니께서 홈쇼핑으로 주문하신 후라이팬 세트를 받아드신 아버지께선 외출하신 어머니가 오시기도 전에 내용물이 뭔지 궁금하다며 우악스런 손으로 상자를 발기발기 찢어서 상품이 마음에 들지 않던 어머니가 반품도 하지 못한 적이 있다.
상자를 밀봉한 테이프만 뜯어내면 될 터인데, 급하기도 하시지..

오늘 받아든 상자의 내용물은 만화책이다.
안타깝게도 내 돈으로 소설책을 사본지는 너무 오래 되었다.; 그러면서도 미처 읽지 않은, 새로운 책이 더러 생기긴 했지만..
박스에서 이제 막 꺼낸 만화책중 한권을 또 낚아채신 아버지께선 또 랩핑을 주욱 찢어 내용을 보신다.

"이게 무슨 만화냐?"

"예전에 제가 작업했던 만화요."

"그래, 니는 여기서 뭘 그렸노?"

8년간 작업하면서 7년간 알려드렸는데, 또 물어보신다.
내가 작업한 페이지를 찾아서 손으로 짚어주며

"여기, 이런 인물을 제외한 배경들이요. 산이나 건물같은.."

"인물은 왜? 그럼 인물은 누가 그리노?"

"당연히 작가님이 그리시지요."

"작가가 그림도 그리나?"


...


아버지에게 작가는 사장님과 같은 개념이라, 자신은 손을 대지 않고 수하를 부려 만화를 그리는 줄로만 아신다.
몇번이고 알려드려도 작가 = 사장, 그러니까 사장은 지시만 할 뿐,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논리는 쉬이 부서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책 뒷면의 가격을 보시더니 깜짝 놀라신다.

"무슨 만화책이 3500원이나 하노? 무신 책이 이리 비싸? 만화책은 1000원만 하면 사는 거 아니가?"

"책이 무신 1000원밖에 안해요.; 저것도 옛날책이라 싼 거지, 요즘은 더 비싸구만. 소설책이 한권에 1만원씩 넘어가는데 만화책이라고 1000원밖에 안 할까."

"이래 비싼 걸 왜 돈 주고 사보노? 만화방 가면 200원만 주면 볼 것을. 이거 한권 보는데 5분이면 다 보지 않나? 5분 보는데 3500원씩이나 뭐한다고 들이노?"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댄데. 아직도 80년대인 줄 아세요? 요즘은 빌려보는데도 1000원이에요."

사실 책 대여료가 1000원씩이나 하겠냐마는, 어차피 모르시니 뻥 좀 쳤다.


아버지께서는 만화를 너무 우습게 여기신다.
아들이 일산에서 8년이나 화실에서 작업을 하고 내려와도, 또 방구석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리고 있어도, 만화는 한페이지 그리는데 10분이면 되는 거고, 만화가는 무엇이든 한번 보면 다 따라 그릴 줄 알아야 하고, 인물화정도는 색칠까지 해도 1시간을 넘기면 안된다.
만화책 한권을 보는데는 5분이면 족하고, 책값은 1000원도 비싸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내 방에 들어와서 만화책을 집어들면 짜증부터 난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형들 또한 만화책에 대한 인식은 별반 다르지 않다.


왜 만화가 이다지도 푸대접일까?
그렇게 푸대접을 하실 거면서, 어째서 아버지 친구분들이 놀러오시면 마치 동물원 원숭이 구경시키듯 내 방에서 작업하는 내 모습을 자랑하실까?
책장에 꽂힌 만화책중에 내가 작업한 책이 어떤 건지도 모르시면서 왜 아무거나 꺼내들고 '이게 우리 아들이 그리는 거다.' 라고 하실까..

그러실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아이고, 아부지.

쫌.

덧글

  • 페리도트 2011/02/23 19:02 # 답글

    아아 저도 별반 다르지않습니다. 전 엄마가 그러시고 만화가 아니라 프라모델이라는 것이지요.
    하아 설명을 해도 잘 못알아들으셔서 참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그냥 냅두면 최고로 좋을텐데 말이죠.
  • TokaNG 2011/02/25 10:26 #

    저는 프라모델로 딴지를 거는 것은 별말 못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결국은 장난감일 뿐이라.;;
    제가 원형사쯤 되는 위치에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요.
  • pientia 2011/02/23 20:59 # 답글

    만화에 대한 인식 때문이겠죠. 제가 또깡님 아버지 같은 세대였다면 아버지와 같은 말을 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세대가 바뀌였고 시대 또한 다르죠. 때문에 저는 제가 좋아하는 만화를 사서 본답니다. 훗날 제 세대 이후에 만화에 대한 인식이 좋은쪽으로 바뀌어 만화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으면 하는 바램이지만요.^^
  • TokaNG 2011/02/25 10:27 #

    시대가 바뀌면 사람의 인식에도 조금은 변화가 있어야 할 텐데, 이건 뭐 확고부동한 것을 넘어서서 점점 더 과거로 퇴보하고 계신 느낌이라, 대화를 할 때마다 답답합니다.;
    하지만 당신께선 누구보다 시대를 잘 맞춰나가고 있다고 자부하시죠.orz
  • 콜드 2011/02/24 02:49 # 답글

    저런 인식때문에 한국 만화계가 orz
  • TokaNG 2011/02/25 10:28 #

    비단 저런 인식때문 만은 아니죠.
    요즘 젊은 애들이 만화를 개똥취급 하는 것은 더 심합니다.
  • 엘레시엘 2011/02/24 09:29 # 답글

    제 부모님도 얼마 전까진 저러셨는데...다행히도 최근엔 입장이 좀 바뀌셨습니다^^
  • TokaNG 2011/02/25 10:28 #

    우리 부모님은 더 악화되셨습니다.orz
  • 한컷의낭만 2011/02/24 12:48 # 답글

    제 부모님도 그러셨는데, 어머니는 바뀌셨습니다. 아버지는 아직도 요지부동. -_-;
    이제 어머니는 스마트폰도 쓰시고, 나름 신세대와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셨는데, 아버지는 그딴게 뭔 필요냐며, 그냥 그대로 사신다네요..
  • TokaNG 2011/02/25 10:30 #

    그냥 그대로 사시는 건 좋은데, 그러시면서 말로는 가장 시대를 잘 맞춰나가는 선두주자라고 자부하시는 게 좀 거시기 합니다.
    사실, 우리 어버지지만 사고방식이 조선시대 양반이거든요.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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