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통화. 그저그런일상들

일본에서 홀로 외로운 타지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가 요즘 들어 부쩍 우울함을 느껴 힘들단다.
메일로도 격려와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역시 전화를 한번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할 말이 없다.


이 친구와 통화를 할 때면 늘상 전화를 거는 사람은 나지만, 말을 하는 사람은 친구여서 난 늘 들어주기만 하는 입장이었는데, 이번에는 우울함으로 기운이 빠진 친구도 말이 없어서 대화가 이어지지가 않아 곤혹스러웠다.

이 친구는 언제나 밝고 쾌활했다.
전화를 걸면 언제나 조금은 높은 톤으로 반갑게 전화를 받아서, 그간 자신의 즐거웠던 일, 힘들었던 일, 짜증났던 일 등을 빠르게 내뱉어 내가 무슨 말을 할 틈도 주지 않았었다.
내가 할수 있는 말이라고는 '어~', '그래.', '맞나~' 등의 추임새 뿐, 짧게는 20분에서, 길게는 한시간을 넘어가는 긴 통화를 하는 동안에 그 친구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 친구의 활발한 목소리가 좋아서, 긴 얘기가 재밌어서 별일이 없어도 전화를 걸어 친구의 안부를 묻곤 했었는데..

그런 친구가 이번에는 말이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무슨 말을 해야할 것 같았는데, 나도 할 말이 없다.
어버버거리다가 대충 기운 내라는 말만 하고는 짧은 통화를 끝내버렸다. 

10분 남짓의, 그 친구와의 통화 치고는 최단시간에 달하는 통화를 마치고 무슨 말을 했어야 좋은 걸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는 누구와도 전화통화를 하면서 내가 얘기를 해본 적이 별로 없다.
늘 상대방의 얘기에 맞장구를 쳐주거나, 상대방의 고민에 격려, 또는 위로를 해주거나, 상대방이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만 겨우 할 뿐.;
그래서 그런지, 연애를 할 때에도 '오빠랑은 통화하는 게 재미가 없어.' 라는 말을 꽤 많이 들었다.
자기 얘기가 끝나고 나면 나머지 시간은 침묵이 이어질 경우가 많으니.

다른 사람들은 전화통화를 하면서 무슨 말을 그렇게 할까? 라는 생각을 해보니, 나와 통화했던 사람들이 했던 말을 떠올리면 답이 간단하잖아? 라는 결론이 나와서 그들은 무슨 말을 했더라? 라는 생각으로 전환해보니, 역시 그들은 자기 얘기를 많이 한다.
자신이 겪었던 일들, 재밌었던 일, 짜증났던 일, 화가 났던 일에 대한 화풀이도 하고, 집에서 있었던 일, 회사에서 있었던 일, 친구랑 싸웠던 일, 이런 저런 고민들까지..
자신의 얘기를 잘도 한다.

그런데 난 전화통화를 하면서 내 얘기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
항상 들어주는 입장이다 보니 내 얘기를 하는 것이 익숙치 않은 건지, 간혹 상대방이 '네 얘기도 좀 해봐.' 라고 하면 말문이 막힌다.
가뜩이나 할 말이 없는데, 내 얘기를 들려달라고 하면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줘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들려줘도 괜찮을까? 이런 얘기는 남들에게 하기는 좀 그런데.. 이런 얘기는 말해도 모를 거야 라며 스스로 내 얘기를 걸러내다 보면 결국 남는 게 없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르고, 통화중인 상대방은 길어지는 침묵속에 애만 태우다 급기야는 지루함을 느낀다.


그래서 상대방이 말을 하지 않으면 통화는 급격히 짧아진다.
오늘의 통화가 그랬다.
늘상 재밌는 얘기들로 긴 통화시간을 꽉 채워주던 친구가 말이 없어지니 침묵의 시간만 늘어가다 결국 아주 짧은 시간에 통화를 끝냈다.

뭐 할 말이 있어야 더 붙잡고 있지.

할 말이 없어 머쓱하게 '다음에는 재밌는 얘깃거리 좀 만들어서 전화 할게.' 라며 서둘러 끊으려는 내 말에 친구가 힘없이 피식 웃는다.
사실 저 멘트도 한두번 쓴 것이 아니지만, 다음번에도, 그 다음번에도 역시나 나는 할 말이 없다.


우울함에 기운이 빠져있는 친구를 웃게 해줄 재밌는 얘기 하나 못 해주는 무뚝뚝한 친구.
포스팅을 할 때엔 별의별 얘기를 주저리 주저리 잘도 늘어놓으면서도, 막상 통화를 할 때는 입이 붙어버려 한마디도 못하냐.


단순히 전화통화만 못하는 걸까, 아니면 사람과 대화를 못하는 걸까.orz  

덧글

  • 마른땅 2011/01/09 12:07 # 답글

    예전에 상담해주면서 친구한테 이런 조언을 해준적이있죠

    "대화라는것은 연계이며, 정보력 싸움"

    왜 냐하면 대화라는것 = 노가리 라는건 그냥 하염없이 그냥 생각없이 뱉어내는거죠
    그냥 어떤 이야기던 뱉어내는것이 대화라는거죠 ..
    딱히 생각할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싫어하지않을 정도는 유지해야죠? 그렇기에 정보력이 필요합니다.
    대화의 기본은 또깡님 처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시작됩니다.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 그런것들을 파악하면 대화하기가
    좀더 수월해지죠
    상대방을 파악하고 내가 뱉어도 될말 안될말 가려서 하염없이 뱉어내면 그것이 바로
    '대화'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A가 있는데 A랑 처음 만나면 먼저 상대방에 대해 물어봅니다.
    어디사니? 집에가면뭐해? 취미는 뭐야? 어디학교다녀? 먹을거 뭐좋아해?
    등등의 질문으로 상대방을 파악하는거죠

    그 질문에 예를 들어상대방이 서울에 살고 집에가면 옷 구경을 하는데 취미는 비즈공예 학교는 경기도에 있는 대학인데 경영학과 설렁탕을 좋아한다고 하면
    그 정보로 부터 수많은 이야기를 꺼낼수있게됩니다.

    서울에 살면 서울의 번화가라던가 사람들이 모이는곳 그리고 맛집등등의 이야기
    옷에 대한이야기 , 취미가 비즈라면 사람은 자기 취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것을 좋아하니
    비즈공예를 모르더라도 그냥 비즈공예에 대해서 조금씩 물어봐주면 대화는 진행되겠고
    ... 결국 대화라는것은 그렇게 어려운게 아니라는거죠?
  • TokaNG 2011/01/09 18:07 #

    저도 대화라는 것이 상대방의 얘기를 들으면서,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 이어감으로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워낙에 듣기만 하고 저장을 잘 하지 않아서.ㅇ<-<
    뇌용량이 딸리는 건지, 세이브 버튼을 누르지 않은 건지,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도 다음번 통화에서는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ㅇ<-<
    항상 그때 그때 주어지는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대하다 보니, 제가 주도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말빨이 딸리게 되네요.;
    어떤 상황이 주어지면 결로 처지는 말빨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ㅇ>-<
  • 페리도트 2011/01/10 22:04 # 답글

    대화란게 참 어렵죠. 세상에 안 어려운게 있을까만은..
  • TokaNG 2011/01/11 07:40 #

    사람을 대하는 건 역시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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