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오는 길. 그저그런일상들

힘들었습니다. 무척이나..

룰루랄라 서면에 나가서 4시간의 짧은 데이트(?)를 마치고 매너 좋은 차도남 행세를 하기 위해 어기영차 지하철을 타고[;;] 여성분을 집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 시간이 아슬아슬하다 싶었더니 아뿔사! 지하철이 끊겼습니다.; 교대는 처음이라 지리도 잘 모르는데.;;
들어가는 버스가 있겠지 싶어 정류장에 가보니 다행히 해운대로 가는 31번 버스가 노선표에 보이길레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립니다.
맞은편 차선으로 31번 버스가 한대 지나갑니다. 오호~ 지금 시간에 나가는 버스가 있다니, 반드시 들어오는 버스도 있겠군! 하며 룰루랄라 기다립니다. 맞은편 차선으로 버스가 또 한대 지나갑니다.

'뭔가 이상하다? 나가는 게 있으면 들어오는 게 있어야지!'

라는 생각에 다시 한번 표지판을 보니, 이런!! 내가 서있는 쪽이 들어가는 쪽이 아니라 나가는 쪽이잖아!!
멀쩡히 두눈 뜨고 집으로 가는 버스 두대를 보내버렸습니다.orz
시간은 이미 너무 늦어 더이상 들어올 버스를 기다리기는 힘들 것 같고, 이대로 여기서 택시를 타면 택시비가 또 만만찮게 나올 거 같은데..;;
우짤까 고민하다가 냅다 걸어봅니다.
뚜벅뚜벅.

길도 잘 모르면서 이정표만 믿고 무작정 걷습니다.

'일단 31번 버스가 저쪽으로 갔으니 저쪽으로 가다보면 해운대 가는 이정표가 나오겠지.'

한동안 이정표를 보며 잘 걷고 있는데, 동래를 지나 안락동에 다다르니 교차로를 몇개나 지나는 동안에 어째서인지 이정표가 안 보입니다? 내가 너무 급하게 걷느라 미처 못 봤나?
대충 감으로 큰길을 따라 주욱 걷고 있으니 그 큰길이 점점 좁아지고 어딘가 이상한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입니다?
이건 아닌데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려 거리명을 보니 명장동.=_=;; 너무 깊숙히 들어왔다.orz

명장동에서 한참을 헤맸습니다.; 어떻게든 되돌아가지 않고 다른 길로 빠져나가 보려 이골목, 저골목을 돌아다녀봤지만 허탕이고, 30여분을 그렇게 뻘짓을 하다가 결국 되돌아 나왔습니다. 걷기 시작한지 한시간이 지났는데, 그중에 반을 헤맨다고 허비하다니. 이래서 길치는 답이 없습니다?

어떻게든 빠져나와서 다시 해운대로 가는 이정표를 찾아 다시 걷는데, 쓸데없이 헤맨다고 체력소모가 너무 심합니다.
옷을 그리 두껍게 입은 것도 아닌데 땀이 비오듯 흐르고, 그에 반해 찬공기를 마시니 목을 칼칼해지고..
맥주를 조금 마셨더니 급기야 잠까지 쏟아집니다? 어머, 젠장.
이대로 그냥 택시를 탈까? 하다가 그래도 조금만 더 가보자 싶어서 다시 뚜벅뚜벅.

하염없이 걷고 있는데 아가씨에게서 잘 들어갔냐는 문자가 옵니다. : ) 잘 자고 일요일에 또 보잡니다.
마치 집에 들어온 것처럼 알았다며 잘 자고 좋은 꿈 꾸라고 답장을 해주고 또 걷습니다. 안락로타리를 지나고 반여동으로 가는 길을 지나고 해운대 경찰서를 지납니다. 이제 그만 택시를 탈까? 하는 유혹이 또 스믈스믈 올라옵니다.
스물한살 때던가? 부산대에서 집으로 걸어갈 때에도 해운대 경찰서가 고비였는데, 이번에도 해운대 경찰서가 보이니 다리에 힘이 풀립니다.
그땐 여기서 지나가던 택시가 공짜로 태워줬었는데..
그런 생각이 드니까 다리에 힘이 더 빠지는 것 같습니다.;;

애써 지나가는 택시들을 외면한채 계속 걷다가 시계를 보니 어느덧 시간은 2시가 다 되어가는데, 어째서인지 집에선 전화 한통 없습니다? 작은형이 늦게 들어오는 날엔 11시부터 10분 간격으로 전화를 하시던 어머니께서..
괜히 서운해서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왜 아들이 늦게까지 들어가지도 않는데 전화 한통 없냐고 물어봅니다.

"니는 술도 안 마시고 알아서 일찍 잘 들어오잖아."

이런.. 어머니께 너무 바른 아들로 찍혔나봅니다. 나도 술 마시고 늦게 들어갈 줄 아는데..
하긴, 심부름도 잘하고, 집안일도 시키면 잘하고, 조카도 잘 돌보고, 술·담배 안 하고, 그다지 큰 말썽 안부리니 그럴만도 합니다? (어이) 백수만 아니었으면 완벽한데. (야)
어머니께서 어쩐 일로 늦냐고 물어보시기에 이러저러하고 저러이러해서 차가 없어 걸어간다고 하니 고마 택시 타고 들어오라십니다.
아싸~ 택시 타도 된다고 허락 받았다~
근데 막상 택시를 타려고 하니 그 많던 택시가 하나도 안 보이냐.;;

택시가 지나가길 바라며 계속 걸음을 옮기다보니 어느덧 센텀시티. 여기에서라면 택시를 타도 얼마 안 나올 것 같아. 마침 저쪽에 빈택시가 한대 서있습니다.

"신도시 대우 1차 아파트요."

시크하게 한마디 내뱉고 폭신한 택시의자에 온몸을 맡깁니다.
오오~ 빠르다, 빨라.

교대에서 센텀시티까지 (길을 좀 헤맸다지만) 두시간 남짓 걸어왔는데, 센텀에서 집까지 택시로 겨우 10분 걸렸습니다.
계속해서 걸었다면 한시간이 넘어 걸릴 거리였는데, 택시비 6000원을 지불하니 겨우 10분만에 도착합니다.
역시 세상은 돈이 최고란. 미련하게 힘들여 몇시간을 걸어도 닿지 않던 곳이 돈 몇푼이면 편안한 택시를 타고 몇십분만에 도착해버리잖아? 이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이 중요한 거구나. (야)


정말 오랜만에 걸어서 집으로 오는 길..
밤길을 걸어본지 얼마나 되었을까? 하며 오랫동안 걸어보지 못한 것에 내심 아쉬운 맘도 있었는데, 간만에 재밌게 잘 걸었습니다.
비록 도중에 택시를 타버리긴 했지만, 걷는 내내 노래도 흥얼거려보고, 아가씨에게 받은 문자를 보며 생글거리기도 하고, 어느새 옷에 배인 아가씨의 향취에 코를 킁킁거려보기도 하고, 그 예쁜 얼굴을 다시금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기도 하며..

역시 걷는다는 것은, 집을 나서는 걸음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이 한결 가볍고 즐겁습니다.

덧글

  • 페리도트 2010/12/03 04:14 # 답글

    시간은 단축인데 돈은 비싸네요 할증때문인가..흠
  • TokaNG 2010/12/03 12:45 #

    할증이 아니라도 셈텀에서 집까지라면 5000원정도 나오긴 할겁니다. 해운대역에서 집까지가 3000원이니.;;
    돈 들여서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시간을 돈 주고 사는 게 되려나요? ㅎㅎ
    역시 돈으로 사지 못하는게 없네요.
  • 페리도트 2010/12/03 15:03 #

    돈이 사람 사는데 많은 걸 편하게 해주네요.
    시간과 피로도를 감축시켜주니 택시를 타는 것도
    타야될때는 타야되는군요.
  • TokaNG 2010/12/03 17:10 #

    그게 바로 자본주의 사회죠. : )
    돈이면 불가능할 게 없습니다? 무려 사람보다 위에 계신 돈님입니다.
  • pientia 2010/12/03 07:01 # 답글

    우와! 데이뚜 부럽습니다. T^T 크리스마스 때 함께 보낼 사람이 생긴건가요? 그나저나 이런 날씨에 걸어다니다간 감기 걸리기 쉬워요. 오늘 새벽에 나오는데 날씨가 엄청 추워졌더라고요.;ㅁ;
  • TokaNG 2010/12/03 12:46 #

    데이트는 했지만 연인은 아닙니다(?)
    크리스마스는 케빈과 보내는 것이 가장 익숙하고 즐겁습니다.
    원래 바보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입니다. : )
  • maus 2010/12/03 07:07 # 답글

    데이트는 좋았지만 마지막 버스가 으앜!!
  • TokaNG 2010/12/03 12:46 #

    엉엉~ 내가 반대편에 있었다니.ㅜㅜ
  • 리크돔 2010/12/03 10:38 # 답글

    잘 자고 일요일에 또 보잡니다. 잘 자고 일요일에 또 보잡니다. 잘 자고 일요일에 또 보잡니다. 잘 자고 일요일에 또 보잡니다. 잘 자고 일요일에 또 보잡니다. 잘 자고 일요일에 또 보잡니다. 잘 자고 일요일에 또 보잡니다.........
    에잇!!!
  • TokaNG 2010/12/03 12:47 #

    일요일에 동호회 사람들이랑 무등산에 갑니다.
  • 2010/12/03 16:2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TokaNG 2010/12/03 17:06 #

    어이쿠~ 감사합니다.;ㅂ; 덥썩 받아버려도 괜찮을지요.;ㅅ;
    비공개글로 남겨드리겠습니다. : )
    저도 카드는 못 보내더라도 그림이라도 그려봐야겠네요. 작게나마 보답을..
  • 에바초호기 2010/12/03 19:56 # 답글

    4시간이 짧냐!!!
    즐거운 데이트 후에는 엄청난 고생을 했구만.;
    추운데 그냥 택시타고 움직이기 그랬나..;;;;그놈의 돈이 뭔지.ㅡ,.ㅡ
  • TokaNG 2010/12/03 19:58 #

    어? 4시간이면 엄청 짧은 거 아니었어?
    모름지기 데이트라면 6시간 이상은 해줘야..
    왠지 택시를 타려니 돈이 아깝더라고. 간만에 걷고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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