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보이지만 결국은 같은 (렛 미 인) 영화애니이야기

헐리웃판 렛 미 인을 보고 왔습니다.
이미 2008년에  스웨덴에서 만든 것을 두번이나 봐서 같은 내용인 이것을 또 볼 일이 있겠나 싶었는데, 역시 다시 봐도 재미는 있었고, 무엇보다 킥 애스에서의 히로인, 힛걸! 크로 모레츠가 나와주어서 눈이 더욱 즐거웠습니다.
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그 잔잔한 멜로이미지였던 렛 미 인을 헐리웃에서 새로 만들면서 과격한 액션이 가미된 블록버스터로 탈바꿈 시키는 건 아닐까 하는 거였는데, 다행히 그러지도 않고 잔잔한 느낌 그대로를 잘 이어줬군요.

영화의 시작은 앞서 본 작품과는 조금 다릅니다.
적막한 설경을 배경으로 사람의 피를 사냥하는 사내의 모습으로 시작하지 않고, 사내가 병원으로 후송되는 모습을 먼저 비춥니다.
염산을 얼굴이 들이붓고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을 치며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내. 경찰이 취조를 위해 병실에 들러보지만 딱히 이렇다할 정보는 얻지 못한채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애비(전작에서의 이엘리)에게 미안하다는 메모를 남기고 추락합니다.
그리고 시간은 2주를 거슬러서 비로소 익숙한 내용이 다시금 이어집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똑같은 노선을 그대로 답사하고 있습니다. 다만 부분적으로 에피소드들의 진행방식에 약간의 차이를 보일 뿐.
딱히 2008년작의 리메이크라는 개념이 아니라, 원작소설을 다시 한번 영화로 만들었다는 말이 납득이 될 정도로 흡사하면서도 곳곳에선 판이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연출마저 흡사하게 해놓아서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장면 장면마다 전작에서의 모습들이 그대로 투영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장면에서는 원래 이랬었지, 저 장면에서는 원래 저랬었지 하며 눈으로 스크린에 펼쳐진 영상을 보면서도 머릿속에선 스웨덴作의 그 렛 미 인이 동시에 그려져 비교 아닌 비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어느쪽도 잘 만들었지만, 역시 몇몇 장면에서는 이쪽이 더 나았네, 저 장면은 저쪽이 훨씬 좋았네 하는 아쉬움도 조금은 들었습니다.

헐리웃판 렛 미 인에서는 역시나랄까, 감정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 느낌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배역의 이름마저 정해지지 않은, 스웨덴판에서의 호칸역인 아버지(?)는 이번 영화에서 애비를 향한 감정을 더욱 확실하게 어필합니다.

전작에서는 무미건조한 대화들로 인해 그다지 감정을 읽어내기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애비의 손을 잡고 자신의 볼을 부비며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그때 내뱉는 대사에 질투가 담겨있다는 것을 확연하게 느끼게 합니다.
그러면서도 보여지는 행동들에서는 애비를 보살핀다는 모습보다는 애비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확실한 주종의 관계도 드러내고 있어 둘 사이의 관계를 미루어 짐작할 필요 없이 친절하게 설명해준다는 느낌입니다. 
전작에선 설명을 듣기 전엔 이사람이 진짜 아버지인지, 혹은 오랜시간을 함께 해온 연인이었는지 아리송했다면, 이번에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 없이 보여지는 관계 그대로를 믿어도 되는 거군요. 게다가 나중엔 둘의 관계를 더욱 확실하게 못 박아주는 사진까지 친절히 보여주니,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찌질한 왕따소년으로 등장한 오웬(전작의 오스칼)은, 전작보다 더욱 음침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어리버리한 표정으로 거울앞에 서서 칼을 들고 양아치 흉내를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소 기괴해 보이는 마스크를 쓰고 제대로 위협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수시로 옆집 아줌마를 망원경으로 훔쳐보며 혼자 두근대는 모습 또한 음침한 그의 성격을 재확인 시켜줍니다.
얘가 이렇게나 변태스러운 애였나?;

전작에서도 오스칼과 엄마의 관계는 무척이나 소원해 보였는데, 그나마 전작에서의 엄마는 얼굴이라도 비추고 오스칼을 따끔하게 혼내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신경쓰고 있다는 모습을 보였다면, 이번의 엄마는 얼굴이 제대로 보인 적이 한번도 없을 정도로 오웬과의 거리를 두고있는 모습을 확실히 보입니다. 그저 움직임과 대사들에서 형식적인 모습만 보일뿐, 너무나도 무관심한 엄마로 그려지는군요.
그리고 아버지 역시 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전화상으로만 감정을 표출합니다.
그러면서도 더욱 확실하게, 오웬이 의지하려 하지만 그것을 알아주지 않고 독단적인 모습으로 그에게 귀 기울여주지 않아 더욱 소외되는 오웬의 모습을 그려냈군요.
오스칼의 가정은 얼핏 아무일 없어 보이는 모습으로 치장했다면, 이번의 오웬의 가정은 확실히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이러니 애가 그렇게 삐뚤어지지. (야)
 
애비(이엘리)가 그나마 가장 흡사한 모습으로 남아있네요.
무심한듯 하면서도 은근슬쩍 오웬에게 기대하는 모습, 꽤나 고독한 뱀파이어의 모습을 잘 표현했습니다.
물론 거칠고 굵은 목소리로 아버지를 타박하거나, 다소 흉측한 얼굴로 피를 갈구하는 모습들로 공포감을 한층 업그레이드하긴 했지만, 그나마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감정이 절제된 모습입니다.

이렇듯 스웨덴作에선 등장인물들이 감정이 최대한 절제되고 겉치레로 잘 꾸며져서 그들의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다면, 이번의 헐리웃작에선 좀 더 친절한 감정표현으로 그들의 관계를 더욱 확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친절한 헐리웃씨. 아마 이걸 먼저 봤다면 그들의 감정에 혼란을 겪을 일도 없었을 텐데. (혹은 이미 알고 다시 봐서 더욱 확실하게 다가오는 건지도?)


감정에 충실해진 캐릭터만큼이나 특수분장의 묘사도 충실해졌습니다.
어찌 보면 쓸데없다고 할 정도로 끔찍한 모습들을 리얼하게 재현한 덕에 조금은 인상이 찌푸려졌습니다. 나빠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너무 흉측해서.
애비에게 목을 물려 살점이 뜯겨나간 부분이라던지, 얼굴에 염산을 들이부어 흉측하게 녹아내려 일그러진 아버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춰주는 것은 물론, 오웬에게 작대기로 귀를 맞아 다친 아이의 찢어진 귀를 제대로 표현했습니다. 오스칼에게 맞은 아이는 귀에서 피를 흘리며 감싸쥐는 것으로 그쳤는데, 이번에는 확실하게 갈라진 귀를 보여서 더욱 끔찍했네요.; 그리고 염산에 일그러진 아버지의 얼굴은 왜그리 오래도 비추는지.ㅜㅡ
애비가 사냥하는 모습에서도 더욱 적나라한 피칠갑으로 혐오감을 한층 부추기더니, 오웬이 피의 맹세를 하자며 손가락을 칼로 긋는 모습마저 아주 깊게 갈라진 손가락에서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며 그걸 보는 제 손가락이 다 찌릿하게 아파옵니다.;
이엘리는 흉측한 뱀파이어 본래의 모습을 한순간 보여주고 말았다면, 애비는 제대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확실하게 위협을 가하니 더욱 무서움을 느낄수 밖에 없습니다.
전작에선 딱히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다 알아챌 수 있는 부분들이었는데, 너무 과하게 디테일한 묘사에 속이 메슥거리네요.;; 과유불급이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인가 봅니다.ㅜㅡ


장면묘사에선 더 좋았던 점도, 조금은 아쉬웠던 점도 있었습니다.
우선 아버지가 얼굴에 염산을 붓게되는 사건은 아주 다른 형식이지만 제대로 긴박감있게 잘 그려냈네요. 보는 내내 저 사건으로 인해 더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해서 얼굴에 염산을 붓게될 거라는 결말을 뻔히 알면서도 두근두근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아버지가 사냥감(?)을 태우고 도주하던 자동차가 사고나는 장면에선 평범하게 달리고 있던 차의 내부를 그대로 비춰주며 창밖이 조금 어지러워지는 듯 하더니 이내 차체가 내부로 조금씩 우그러져 들어오며 종국에는 거꾸로 뒤집힌채 비탈길을 떨어진 차를 보여줍니다.
순간 저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는데, 비로소 아! 그런 거였구나! 하며 무릎을 탁 치게 되는 기발한 연출이었단. 이건 말로 표현하기 보다는 직접 봐야 그 오묘하고도 신기한 연출을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가장 인상적이었네요.
그리고 부분적으로 크게 눈에 띄지 않게 세련된 장면들을 보이기도 하면서 한층 나은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애비에게 목을 물린 여자가 뱀파이어의 속성을 가지게 되면서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는 모습은 전작이 훨씬 나았습니다.
전작에서는 일단 목을 물리고도 치료를 받고 나와서 일상으로 돌아왔다가, 점점 이상해지는 자신을 느끼게 되면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다가 결국은 간호사에게 부탁해 스스로 햇빛을 쐬고 불에 타게 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목을 물리자마자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뱀파이어의 속성을 내심 즐기며(?) 피를 탐닉하는 모습을 잠시 비추더니, 간호사의 실수로 불에 타 사라집니다.
그 미묘한 캐릭터의 심경변화를 전작이 더욱 잘 살렸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애비가 병원에 있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벽을 타는 모습은 성큼성큼 기어오르던 이엘리의 모습과는 달리 너무 힘들어 보여 참 태가 안났습니다.; 어기적 어기적, 그야말로 기어가는 모습이라니.;; 한번은 발을 헛디디기도 하면서 위태롭게 오르는 모습이 리얼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안쓰러워 혼났네요.

전작에서 탁월한 연출을 선보였던, 수영장에서의 하이라이트씬은 이번에도 역시 동일한 연출을 선보이긴 하지만, 움직임이 너무 격해져서 조금 반감했습니다.
뭐랄까, 오스칼은 자신이 보호받고 있는지도 모르게 편안히(?) 이지메를 당하고 있다가 나와보니 이엘리가 끝장내준 느낌인데, 오웬을 구하러 온 애비는 내가 널 위해 이녀석들을 처리해주고 있어! 라고 어필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수면너머로 잘 들리지 않던 비명소리는 더욱 격정적으로 울려퍼져서 오웬을 주눅들게 하고, 조용히 떨어져 가라앉던 머리는 큰 소리를 내며 첨벙 하고 가라앉아 오웬을 놀래킵니다.
한바탕 피의 살육이 끝난후 물밖으로 얼굴을 내민 오스칼은 참은 숨을 들이키며 콜록거렸지만, 오웬은 공포에 질려 오열하는 모습을 보여 안타까웠네요.
왠지 이 사건으로 오스칼은 이엘리에게 의지하게 되지만, 오웬은 애비에게 복종해야 할 것 같은 느낌?
기본적으론 같은 콘티인 것 같은데 결과물이 이렇게나 다르다니, 이 또한 놀랍습니다.


하지만 이러쿵 저러쿵 해도 결국 전체적인 느낌이나 스토리, 감정들은 한결같은 작품입니다.

애비와 오웬의 어색하면서도 잔잔한 사랑 나눔.
이제부터 둘이 서로 의지하며 함께 해야 한다는 이야기의 노선은 이탈하지 않고 잘 끌어왔습니다.
어느쪽도 일장일단이 있어서 감히 둘중에 어떤게 더 나았다는 말도 못할 정도로 괜찮았네요.
사실상 크로 모레츠를 보러 갔다가 정말로 렛 미 인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상영관엔 역시 크로 모레츠를 보러 온 사람들인지, 오덕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들이 득실대더군요.;
저도 그중 하나였기에 차마 뭐라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작품이 이렇게나 잘빠졌는데 불이 켜지자마자 내용을 이해도 못했다고 울부짖는 건 좀 아니잖아.;
정말 크로 모레츠만 본 거냐? Σ=ㅁ=

헐리웃판 렛 미 인..
잘빠졌습니다.
이러쿵 저러쿵 말은 많이 했지만 좋았습니다.
2008년꺼 보셨어도 한번쯤 더 보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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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우누 2010/11/21 02:52 # 답글

    끄응 저는 전의 그잔잔한 느낌을 고이고이 간직하겠어요 ㅇ<-<
  • TokaNG 2010/11/21 03:20 #

    이번 작품도 꽤 잔잔합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대로 잘 살린 것 같아요.
    그나마 2008년작에 비해서 좀 격해졌을뿐.. 꽤 볼만해요~
  • 가르마 자비 2010/11/21 13:20 # 삭제 답글

    또깡님의 리뷰가 영화 선택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좋은 영화를 보게 되었네요. 섬세한 리뷰 감사합니다.^^
  • TokaNG 2010/11/21 18:52 #

    아이쿠, 제 리뷰로 인해 즐거운 감상을 하셨다면 저야말로 감사하죠. : )
  • 렛더롸익온잇 2010/11/22 00:50 # 삭제 답글

    흠...헐리우드에서 만들게 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우려했던 것 보다는 작품이 잘 나와서 다행이었습니다...

    맷 리브스가 나름 내공이 있는 감독이고, 아역들도 다양한 작품으로 이전부터 연기를 해온 아이들이라 프로다운 포습을 보였으니 최소한 망치지는 않은 듯 합니다...

    그들 말로는 스웨덴 판의 리메이크가 아니라 소설 자체를 영화화한 새로운 작품이라고 주장들을 하는데... 그 부분은 헛소리더군요...

    그 말이 사실이라면 원작을 좀더 충실히 구현하던가 좀더 상상력을 발휘하여 카메라 앵글, 소품, 주요 장면을 좀 더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데.....

    그게 리메이크가 아니면 표절이겠지요....ㅎㅎㅎ

    심지어는 토마스 감독이 원작 소설과는 다르게 오스카와 이엘리가 함께 떠나면서 모스부호를 주고받는 장면을 집어넣은 것까지도 동일한데 말이죠....

    어찌됐건 간에 제가 정말 사랑하는 영화를 다른 버전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는 흥미롱누 일이었네요
  • TokaNG 2010/11/22 02:28 #

    아, 마지막 장면의 모스부호 주고받는 장면이 원작에는 없는 오리지날이었던 겁니까?
    그럼 원작을 재해석했을 뿐이라는 그들의 말은..=_=;;
    어째 분위기라던지, 핵심적인 연출까지 아주 흡사해서 소설에 그런 디테일한 묘사가 되어있나 했습니다.
    정말 이쯤 되면 리메이크가 아니라면 표절이겠네요.;;

    그렇다곤 해도 조금씩의 차이는 보이는 영화들이라 역시 둘 다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들의 사정은 그들에게 맡기기로 하죠, 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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