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기적은 어디에? (1번가의 기적) 영화애니이야기

재개발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산동네 사람들의 이야기, 1번가의 기적.
그 산동네에 주민들의 철거 동의서를 받아내기 위해 들어온 조직원 필제를 필두로 한 좌충우돌 마을사람들의 이야기는 꽤나 훈훈하고 좋았습니다.
무려 폭력조직의 일원이면서도 마음이 약해서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하지도 못하고 쩔쩔 매다가도 필요에 의해서는 갖은 허풍으로 센척도 해보고, 아이들의 영웅처럼 보여진 이미지에 그들의 힘이 되어주기도 하는 등, 영화의 중반까지는 절망적인 그림보다는 밝고 따뜻한 그림이 주를 이뤄 훈훈한 미소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병상에 누워있는, 권투선수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다시 한번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두르고 말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다소 억척스러운 느낌의 명란과, 그런 그의 모습을 안쓰럽게 지켜보는 이관장, 허름한 산동네에 살면서도 허영심에 그렇지 않은척 운동화와 하이힐을 번갈아 신어가며 다단계 회사에 자랑스럽게 출근하는 선주와 그를 짝사랑하는 태석의 풋풋한 모습, 암에 걸린 할아버지를 위해 토마토를 심어보자며 개구진 장난(?)을 하는 꼬꼬마 남매들, 하늘을 날고 싶다며 울트라맨 가면을 쓰고 가건물 지붕에서 자꾸만 뛰어내리는 꼬마 등, 힘들게 살면서도 저마다의 자부심과 목표를 가지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꽤나 따뜻하게 그려졌습니다.

영화 중반까지는..

아저씨, 육혈포 강도단 등에서 탁월한 악역연기를 선보였던 김희원이 등장하면서 훈훈했던 영화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이때부터는 조금은 뻔하면서도, 조금은 극단적인 모습으로 마을주민들을 짓밟는 장면이 연출되어 조금 불편해집니다.
강제로 동의서에 도장을 받아내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거라는 것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서러움을 못 견딘 주민이 분신을 한다던지, 필요 이상의 난동으로 인해 주민들의 모습을 더욱 비참하게 그려낸다던지 하는 연출은 좀 오바스러웠다는 생각이..

윤제균 감독은 여타 전작들을 봐도 그렇고, 얼마전에 대박을 친 해운대에서도 그러했지만, 그리 길지 않은 러닝타임에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무난하게 잘 연결되던 이야기에도 느닷없는 장면들이 한컷, 두컷 개입되어 되려 스토리에 방해를 초래하기도 하고.. (사실, 이런 부분은 재밌게 보긴 했지만 해운대에서 가장 크게 도드라진 듯.; 정말 흐름을 방해하는 사족들이 넘쳐났었습니다.)
무난하게 잘 이어가던 극의 분위기를 한순간에 극단적으로 뒤엎어버리니, 보는 사람도 속이 같이 뒤집어집니다. 길 데 안 낄 데 모르고 쌩뚱맞게 찾아드는 개그컷과, 너무 극단적으로만 몰고가는 상황들은 윤제균 감독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정말 중반까지는 마냥 훈훈한 웃음 지으며 잘 보고 있었는데..



마을을 지키는 수비대처럼 등장해서는 임창정에게 따까리처럼 부림을 당하고, 암에 걸린 할아버지를 위해 화분에 토마토를 심어보자는 발칙한 상상을 하는 이 꼬마들은 정말 귀엽습니다.
특히 걸출한 사투리로 꽤나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이며 개성강한 캐릭터를 자랑하는 이 남매중에서도 여동생 이순역의 박유선 어린이는, 올망똘망 커다란 눈을 치켜뜨고 시크하게 한마디 툭 던지는 것이 촌철살인이라 아주 귀엽네요. 과속스캔들황기동을 연기해 붐을 일으켰던 왕석현 어린이보다 탁월한 캐릭터였습니다. 이 꼬마가 영화의 재미를 1/3쯤 책입집니다. 꽤나 비중있는 캐릭터란..

자판기로 처음 만난 태석선주의 풋풋하고 낯간지러운 사랑이야기는 꼬꼬마들의 천진함과는 다른 느낌의 따뜻함을 선사합니다.
선주역의 강예원해운대에서보다 좋은 연기를 선보이고(이게 먼저 찍은 건데 어째서?;), 태석을 연기한 이훈은 평소 이미지와는 아주 다른 자상하고 따뜻한 연기를 보여 조금은 징글맞고 느끼하기도 하지만, 마지막까지 훈훈한 모습을 잃지 않아 부끄러우면서도 괜찮았습니다.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위해 다시한번 챔피언 벨트를 따내고 말리라는 다짐을 하는 명란을 연기한 하지원과, 그와 티격태격하면서도 점점 마음이 동하는 필제역의 임창정의 이야기도 꽤나 흥미진진하지만..


위암이라던 할아버지는 죽을 생각도 않고, 되려 러닝타임이 흘러갈수록 점점 건강해지는 모습을 보인다던지,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그 울트라맨 꼬마는 왜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은 둘째 치고라도(울트라맨 꼬마는 결국 하늘을 잠깐이나마 날아보긴 하지만), 1번가의 기적이라는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기적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산동네 주민들의 집은 무서운 포크레인에 의해 쑥대밭이 되고, 그들과 함께 어울리다 정이 들어버려 차마 이 비참한 광경을 두고 볼 수 없어 맞서던 임창정은 흠씬 두드려 맞고 너덜해지고, 동양챔피언에게 겁없이 도전했던 명란은 고군분투 해보지만 역시 피떡이 되어 판정패를 당하는데..
그들이 가지고 있던 희망의 끈을 이렇게 무참히 다 끊어버리고는 무슨 기적을 보여주겠다는 건지.;;
제목에서 기적이라는 단어를 빼고, 차라리 '1번가 사람들' 이라던지, '1번가 이야기'라는 식의 무난한 타이틀이었다면 굴곡있는 그들의 이야기와 더욱 잘 어울렸을 것 같습니다.

에필로그에서 쌩뚱맞게 다들 행복해진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말 그대로 아무런 조짐 없이 급하게 행복해진 느낌이라, 이것이 비참해진 그들을 달래기 위한 환상인지, 아니면 후에 정말 그들이 그렇게 행복해졌다는 건지 가늠할 수가 없어 당황스럽습니다.
마치 2012에서 건물이 무너지고 지반이 갈라지고 화산과 해일 등으로 지구가 절망에 빠지는 모습을 실컷 보여주고는 나중에 결말에선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이 출근하고, 꼬꼬마들이 웃으며 등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한 기분?
조금 어이가 없어질 정도의 격한 쌩뚱맞음이라 잠시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그렇다곤 해도 영화 중반까지의 가슴 따뜻하고 훈훈했던 이미지가 더욱 강하게 남아서 썩 괜찮게 볼 수 있었네요.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거지만, 윤제균 감독은 만화가로 치면 장편 극화보다는 4컷만화가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면 장면 보여주고 싶은 에피소드는 많은데, 그 에피소드들을 한데 모아놓으면 다소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즈망가 대왕을 무리해서 엠마와 같은 스토리 만화로 그려낸 듯한 느낌.; 둘 다 좋은 작품이긴 하지만, 아즈망가 대왕이 4컷으로 끊어지지 않고, 엠마처럼 끝까지 주욱 연결된다고 생각하면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정신없이 뒤엉켜서 재미와 설득력을 떨어뜨릴 것 같습니다.
윤제균 감독이 딱 그렇단.;;
조금 아쉬운 부분입니다.

핑백

  • ♠또깡이 窮狀 茶飯事♠ : 시크릿 가든. 2010-11-23 00:15:49 #

    ... 라지?;;극중에 대사인용이 나와서 푸훗 했습니다.하지원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보면 귀엽긴 하단 말입니다? 요 근래에는 하지원이 괜찮게 나온 작품도 더러 봤고.. (1번가의 기적이라던지..)연기력이 뛰어나서 괜찮다기 보다는 캐릭터와 아주 잘 어울려서 괜찮게 보인 작품이지만, 연기도 그정도면 나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현빈의 상상속에서 보이는 표정연 ... more

  • ♠또깡이 窮狀 茶飯事♠ : 공즉시색 (색즉시공) 2011-01-09 17:58:46 #

    ... 한번 보았다.요즘 시크릿 가든을 보기 시작한 후로는 하지원의 미처 몰랐던 매력에 흠뻑 빠져서, 곰TV 무료영화 목록을 훓어보다 그가 나온 영화가 올라올 때면 빠짐없이 보고 있다. 1번가의 기적도 벌써 두번이나 보았고, 바보도 다시 한번 보게 되었고, 이번의 이 작품까지.확실히 하지원에 대해 그리 호감을 느끼지 못하던 때에 보다는 훨씬 재미있고, 매 영화 ... more

덧글

  • 동사서독 2010/10/17 16:21 # 답글

    이 영화 기본적인 구조만 따지고 보면 영화 <아바타>와 비슷하죠. (아바타가 늦게 나왔지만... ㅋㅋ)
  • TokaNG 2010/10/17 22:32 #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하지만 이 영화는 자신들의 거주지를 지키려는 것에 그쳤다면, 아바타는 자연을 지키려 하는 것이니 조금 더 포괄적일지도요. 산동네 사람들은 돈만 많이 주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아바타의 나비족은 돈이 문제가 아니니..
  • 페리도트 2010/10/18 01:39 # 답글

    일번가의 기적은 어디가 기적인지는 몰라도 임창정이 조직을 나오고 무사히 하지원의 매니저가 된것이 기적인거 같아요.
  • TokaNG 2010/10/18 02:00 #

    본문에서도 언급했지만, 너무 쌩뚱맞아서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가질 않아서 말입니다.=ㅅ=a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블랙)

65180
808
2151373

google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