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복남씨.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 네타 주의 영화애니이야기

더는 미루다간 골든 슬럼버 꼴 날 것 같아 냉큼 보고 왔습니다. 마침, 같이 보기로 한 큰형도 시간이 맞아서..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리뷰를 읽고 익히 알고 갔지만, 생각보다 불편한 영화군요.

오프닝에서 느닷없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깜짝 놀랐습니다. 라디오로 즐겨 듣던 컬투쇼, 그중에서도 배를 잡고 웃었던 생식체험 사연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면서 화면에는 차창 너머로 어지러운 도시풍경이 그려집니다.
컬투쇼는 오후 2시에 하는 건데, 배경이 밤인 지금 시간대에는 안 맞잖아? 라는 생각이 들 때쯤, 웬 양아치들에게 폭행당하는 여성이 등장하면서, 핸드폰에 파일을 다운받아 듣던 컬투쇼의 사연 진품명품 - 생식체험 사연은 급하게 종료됩니다.

남의 일에 관여하는 것을 극도로 귀찮아 하는 해원. 창밖으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여성을 뒤로한채 차문을 걸어잠그고 유유히 그 길을 벗어나니, 결국 그 여성은 그 양아치들에게 살해당하고 해원은 목격자 신분으로 경찰에 소환당합니다. 하지만 그자리에서도 깊이 관여하기를 귀찮아 하며 어두워서 자세히 보지 못했다고 대충 얼버무리는 해원. 그는 은행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대출을 받으러 온 할머니를 매몰차게 거절하고, 그 할머니에게 자신을 대신해 대출을 해준 후배에게는 따끔하게 한마디 쏘아댈 정도로 자존심도 강합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이 쓰여 후배에게 화해의 문자를 보내려 하다가도 먼저 후배가 문자를 보내오자 웃으며 답장을 해줄 정도로 쿨한 면도 없잖아 있긴 한데.. 
그런 그의 비정한 모습을 보고 그를 골탕먹이려고 누군가 화장실에 그를 가둬버리자, 문틈으로 살짝 보인 슬리퍼가 같다는 이유로 이미 화해를 한 후배의 따귀를 거칠게 쳐올리는 과격함도 있네요. 그 사건으로 해원은 잠시 휴가를 받고, 복남이 몇번이나 편지로, 전화로 그렇게 놀러오라고 부르던, 어릴 때 외할아버지댁이 있던 무도로 잠시 쉬러 갑니다.

오프닝에서 해원의 성격을 한눈에 알 수있게 보여주고, 무대는 해원을 따라 무도로 옮겨갑니다. 복남은 드디어 해원이 놀러오자 반가운 마음에 일찌감치 마중나와 손을 크게 흔들고, 와락 껴안으며 반깁니다.
그리고 잠시 쉬러 온 해원은 눈에 비춰지는 복남의 생활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데..

이렇게 환하게 웃는 그가 그렇게나 비참한 삶을 살아왔을 줄이야..

타인에게 극도로 무관심한 해원의 행동들도 심히 불편했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불편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섬은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이곳 무도는, 확실히 이상하네요.
남자라고는 복남의 남편인 만종철종형제와, 치매가 걸린 머슴 노인네까지 셋.
할머니 넷과 복남의 딸까지 총 9명이 이 섬의 정원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유일하게 사람구실을 하는 만종이 모두의 가장인 양 떠받들여지고 있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모두 옳고, 그에게 감히 대드는 것은 법을 거스르는 것과 같습니다.


할머니들은 오로지 남자타령만 하며 만종을 위하고, 그에 비해 복남은 일만 하는 노예와도 같은 신세.
노동력만 착취당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폭력과 성적 학대까지 받아가며 그야말로 가축 취급을 받는 복남은 서울에서 놀러 온 해원이 자신을 구원해주길 바라지만, 그의 애절한 부탁에도 역시 해원은 쌀쌀맞기만 하네요.

복남과 해원의 관계는 단순히 친구라고 하기엔 뭔가 그 이상의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멀리서 왔다지만, 아무리 노예근성이 몸이 베었다지만, 해원을 끔찍이 챙기는 복남의 시선에는 우정 이상의 감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어릴 때 즐겨 몸을 담구던 개울가에서 함께 목욕을 하면서도 슬쩍 가슴을 만진다거나, 서러운 마음을 달래려 한가로이 평상에 누워있는 해원의 곁에 누워 볼을 부빈다거나 하는 스킨쉽에서도 단순한 우정 이상의 깊은 애정이 숨어있습니다.
왜 그런 모습을 보이는가 싶었더니, 어릴적 섬에 놀러온 해원이 장난삼아 복남의 볼에, 입술에 뽀뽀를 하며 까르르 웃던 모습에 복남이 동한 듯.
자신을 거칠게 학대하기만 하던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잠시나마 자신에게 친절을 베푼 해원이 특별하게 다가왔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이내 남자들이 껄렁하게 시비를 걸어오자 자신을 버리고 도망가버리기도 하고..

해원에게 매몰차게 거절당한 복남은 자신이 학대당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딸에게까지 몹쓸 짓을 하려는 만종에게서 벗어나려 하지만 그리 여의치 않고, 그 과정에서 되려 아끼던 딸을 잃고 맙니다.
만종의 실수로 딸이 죽어버렸는데도 섬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만종을 두둔하고, 되려 복남을 죽일년이라며 손가락질 합니다.
복남은 위기의 순간에 해원을 바라보며 진실을 말해줄 것을 눈빛으로 애원하지만, 해원은 그의 그런 바람을 사뿐히 저버리고..
더이상 살아가는 것에 의미를 잃은 복남은 넋이 나가버린 사람처럼 일에만 몰두하는 듯 하더니..


 남자들이 뭍으로 나간 어느날, 태양과 눈싸움을 하던 복남은 무언가 깨달은 듯 물을 벌컥벌컥 마시다 이렇게 말합니다.

"태양이 그러대요? 참으면 병 된다고."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복수의 낫질.

영화의 반 이상을 불편한 복남의 이야기들로 꾸며대던 영화가 드디어 전환점을 돌아 복남의 편에 섰습니다.
애초에 순한 양처럼 아무말 못하고 당하기만 하던 복남은 그 격한 상황에서도 본성은 잃지 않고 순하디 순한 어투로 조근조근 말합니다.

"고모님, 그리 급하게 가면 넘어져유."

시커먼 피가 뚝뚝 흐르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뛰지도 않고 성큼성큼 걸어오며 타이르듯 말하는 그의 대사는 부드러운 어투이면서도 한편으론 섬찟하기도 합니다.
자신에게서 도망치려 뒷걸음질 치던 할매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아이구, 고모님, 돋보기 하나 하시지..' 라고 나즈막히 읊조리는 모습 또한 무섭습니다.

뭍에서 돌아온 철종의 목을 날카로운 낫을 빙 돌려 따버리고, 만종에게도 낫을 휘둘러보지만 이내 힘 센 남자인 만종에게 제압당하고 마는데..


복남의 또다른 무서움은, 자신의 목을 겨운 칼을 마치 성기를 애무하듯 혀로 부드럽게 핧는 장면에서 또한번 느껴집니다.
복남이 무섭게만 느껴져 성기능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만종의 외침에, 그를 가련한듯 그윽하게 올려다보다 슬그머니 혀를 내밀어 날카로운 칼을 애무하는 모습이 어찌나 섬찟하게 느껴지던지.
그 와중에도 마치 자신이 애무를 받는 것처럼 넋이 나가 입을 헤~ 벌리고 잠시 녹아드는 만종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역습을 가하는 복남. 이후로 이어지는 서슬 퍼런 낫으로 행하는 난도질보단, 그 차가운 애무가 확실히 더 무섭습니다.

마을사람들을 다 죽여버리면서도, 복남은 본성이 착해빠져서인지 일일이 정성스레 무덤을 다 만들어주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치매노인에게는 마지막 밥상까지 차려주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그토록 학대하던 사람들에게 피의 복수는 했지만, 사람으로서의 도리는 지켜서 친절을 베풀어 그들의 영생의 쉼터를 꾸며줍니다.
이런 친절한 사람.

그리고 드디어 뭍으로 들어온 복남은, 자신에게 불친절했던 해원을 찾아내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그 절정의 씬에서 포스터의 저 장면이 나오는데, 아주 적절하고, 슬프고, 영화에서 최고의 베스트컷이라고 느껴질 만큼 좋았습니다.


이제 모든 사건에서 벗어난 해원은 조금씩 변합니다.
타인의 일에 더욱 깊이 관여할 줄 알게 됩니다.
오프닝에서 해원의 무정함을 보여줬던 사건의 증인으로 범인을 제대로 지목해주고, 그동안 방치해뒀던 복남의 편지를 이제야 뜯어보기 시작합니다.


편지를 읽으며 후회속에 살며시 드러누운 해원의 모습과 오버랩 되며 무도가 보이는 연출은 꽤나 재밌었습니다.
무도의 모습이 흡사 여인이 누워있는 모습과 닮아있더군요. 신기해라.
그리고 스텝 롤이 올라가는 동안에 보여지는, 어린 시절 복남과 해원의 다정했던 모습이 그들의 현재를 더욱 안타깝게 합니다.


해원을 연기한 지성원 씨는 얼핏 심은하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단아한 단발머리와, 차가운 듯한 도시이미지와, 와중에도 잠깐씩 보이는 따뜻한 웃음이 마치 한창 때의 심은하 씨와 닮았더군요.
하지만 역시 프로필 사진을 보니 심은하와는 다른 모습이라 다소 실망스러워, 영화속 스샷을 담았습니다.

서영희도 이렇게 꾸며놓으면 상당히 예쁜 얼굴인데도, 영화속에선 어찌나 촌스러운 섬사람의 모습을 잘 나타냈는지..
시커멓게 그을린 피부와 꼬질고질한 옷을 대충 주워입은 모습에서도 예쁜 얼굴이 쉬이 죽진 않습니다만, 멀쩡한 모습이 이렇게나 예뻤는 줄은 미처 몰랐네요.
그동안 보아온 모습이라고는 추격자에서 피칠갑 되어 죽고, 스승의 은혜에서 피칠갑 하고, 여기서도 피칠갑 하고..
온통 피로 버무려진 모습 뿐이었는데..


온갖 불친절함 속에 핍박 받으며 서럽게 살아온 김복남의 삶을 내내 불편하게 보여주다가, 마침내 결단의 낫을 뽑아들어 그간의 설음을 되갚아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전율이 일며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하지만, 역시나 뒤끝이 좀 불편한 영화였습니다.
아무런 정보 없이 그저 재밌다는 내말에 함께 보러간 형은, 김복남이 저리 서럽게 살다 죽어서 그 한을 파헤치는 내용인 줄 알았더니, 되려 김복남이 속 시원한 복수를 해내서 다행이었다고 하네요.
하긴, 그렇게 서럽게 살다 자기가 덜컥 죽어버렸으면 억울해서 눈이나 감을 수 있을까. 제가 생각해도 다행이긴 합니다.

아저씨, 악마를 보았다에 이어, 또한번 전율의 복수를 보여주는 영화이긴 하지만, 이런 피를 부르는 복수물은 속이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로 열라 찜찜하기도 합니다.


아.. 재밌게 보긴 했지만, 뭔가 기분이 이상해.
마치 7일동안 묵힌 변을 시원하게 장이 뻥 뚫릴 정도로 싸고나니 화장실에 휴지가 없어서 대충 말리고 나온 것 같은 기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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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닥슈나이더 2010/09/10 08:55 # 답글

    서영희씨는 추격자에서와는 반대되는 역할이군요...
  • TokaNG 2010/09/10 13:36 #

    그게.. 별반 다르지도 않습니다.;;
  • 페리도트 2010/09/10 20:49 # 답글

    아 한번 봐야겠어요 궁금하네요 영화가
    근데 저렇게 불편한 사람나오는것은 저에게 스트레스상승요인인데 흠 고민중
  • TokaNG 2010/09/10 21:45 #

    뭐, 악마를 보았다나, 아저씨만큼의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으니, 나름 괜찮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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