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나이. 만화책☆이야기

문득 생각나서 책장 구석탱이에 꽂혀있는 것을 꺼내어 다시 읽어봤는데..
어레? 1, 2권이 없다? 2권은 몰라도 1권은 있는 줄 알았는데..
하도 본적이 오래 되서 1, 2권의 내용이 어땠는지도 가물거린다.;

이게 언제적 만화더라..
무려 단행본 가격이 2000원인 시절의 만화다. 요즘 단행본의 반값도 안되는, 꿈의 90년대.
요즘처럼 책등이 가지각색 화려하지도 않은, 만화제목만 떡 하니 박힌 심플하고 통일된 디자인. 당시에 나온 거의 모든 만화책들이 출판사마다 책등이 통일되었었지, 아마.
표지도 요즘처럼 디자인적이고 세련되기보다는, 그냥 일러스트에 타이틀 하나 박아놓은 것이 전부인, 다소 촌스러운 모습.
하지만 속의 그림들은 요즘의 국산만화들보다 훨씬 나은 모습이다.

확실히 기성작가들이 펜선을 맛있게 잘 쓴다.
요즘의 신인들은 그저 펜으로 데생을 따라 긋는 것에 급급한 모습을 많이 보이던데, 90년대의 만화에서는 그렇게 맛깔스러운 펜선을 보일 수가 없다.
특유의 강약을 잘 살린 깔끔하고 세련된 외곽선과 섬세한 가는 선으로 채워진 디테일, 효과선 또한 날카롭고 강렬해서 눈에 잘 들어온다.
요즘의 국산만화들이 효과만 다양해졌다면, 90년대의 만화는 그야말로 기본기가 탄탄하다. 그림만 봐도 재미가 있다. 
물론 요즘 만화들도 저마다의 탁월한 센스를 한껏 뽐내고 있긴 하지만..


'제갈 길'이라는 이름만큼이나 소신있고 자신의 뜻을 쉬이 굽히지 않는 독고다이 주인공이 그려내는 스쿨 라이프는 지금 봐도 어색함이 별로 없다.
다만 대사센스만큼은 요즘의 것들과 많이 달라서 손발이 오그라들긴 하지만.;;
주먹과 권력을 앞세운 날라리 고딩들의 힘자랑은, 흡사 요즘의 정치판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 무섭기까지 하다.
무려 16~7년전에 그려진 만화임에도 정치판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욱 무섭다.
어째, 90년대 고딩들의 권력다툼과 지금의 국개의원들의 모습이 달라보이지가 않는지.
항상 가진 자는 삐뚤어져있고, 더욱 큰 힘을 원하고, 모든 이가 자신을 떠받들기를 바란다.
그런 그에게 대항하는, 나름의 철학으로 무장한 올곧은 자는 튀어나온 못이 되어 수없이 많은 망치질을 당할 뿐이다.
진무치는 권력위에 있고, 제갈 길은 거기에 대항한다.
아니, 대항이라기 보다는 섞이기 싫어할 뿐이지만.
섞이지 않으면 적이 되는 모습 또한 요즘의 세상과 다를바가 없다.
17년의 세월동안 세상은 변한 것이 없는 모양이다.;;


전체적으로는 학원폭력물의 양상을 띠고 있지만, 그속에서도 시대의 트랜드는 잘 녹아있다.
인라인이 이제 막 보급되어 한창 붐을 일으킬 때에는 느닷없이 주먹이 아닌 인라인으로 승부를 겨루고, 슬램덩크와 헝그리 베스트 5, 마지막 승부 등으로 한창 농구 이 일 때에는 또 농구로 자웅을 겨룬다.
청소년이 즐겨 보는 만화이다 보니, 청소년들의 관심이 쏠릴만한 요소는 잘도 버무려놨다.
다소 억지스러운 모습을 보이지만, 그래도 재밌게 잘 그려내니 별다른 불만이 없다. 농구로 겨루는 장면에선 마치 슬램덩크를 보는 것과 같은 역동적인 움직임과 디테일한 묘사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리고 청소년들이 무엇보다 가장 큰 관심을 보일, 학교내 부조리와 폭력교사까지 다루면서 속이 시원한 웅변을 토해낸다.


역시, 몇번을 봐도 재밌는 작품이라, 순식간에 10권을 다 읽어버렸다.
만화의 도입이 되는 1권이 없어진 것이 못내 아쉽긴 하지만, 제갈 길의 캐릭터는 충분히 보여졌으니.

이런 90년대의, 2000원짜리 옛날만화가 부모님 손에 버려지지만 않았다면 더 많고 많았을 텐데, 지금은 얼마나 있나 생각해보니 마이러브크래쉬, 8용신전설 등이 떠오른다. 얼마 남아있진 않았구나..

넘사벽인 일본만화는 논외로 치더라도, 국산만화만큼은 확실히 90년대가 최고였다. 
아까운 내 만화책들..
당시엔 일본만화라고는 슬램덩크아기와 나 밖에 없을 정도로 국산만화들을 많이 모았었는데, 이제와서 책장을 훓어보니 국산만화가 거의 보이지 않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국만화계에 90년대의 영광이 다시 한번 도래하길 바라지만, 과연...


요즘의 판을 보면 시망이다.


덧글

  • 지옘 2010/09/08 13:17 # 답글

    그 당시 신문 기사가 생각나네요. 진짜 사나이, 어쩐지 저녁, 열형강호, 마이러브가 단행본 백만부 돌파했다는 신문 기사가 대문짝 만하게 떴었는데..한국 만화의 부흥기 어쩌구 하면서요.ㅎ 이제는 뭐..아련한 옛 이야기.ㅜ.ㅜ
  • TokaNG 2010/09/08 16:51 #

    그 백만부 돌파한 만화가 다 우리집에 있습니다. (열혈강호는 모으다 말았지만;;)
    90년대의 판매량은 대단했지요. 현재의 최고 인기작이 당시의 데뷔작과 판매량이 맞먹을 정도로..[...]
    요즘에는 신인작가의 데뷔작은 동인지보다 안 팔리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하더군요.;;
    동인지도 1천부는 팔리는데, 만화책이 2백부가 고작이라니.orz
  • 삼별초 2010/09/08 14:09 # 답글

    저때만 반짝이고 이후 박산하 작가는 장렬히 산화(...)합니다
    2부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는데 그림체도 180도 봐뀌었고 내용도 뭐라 할말이 없더군요 (아웃복서도 1부만...)
  • TokaNG 2010/09/08 16:59 #

    아뇨, 이후로도 A+ 모범생이라던지, 미들맨이라던지 하는 소년만화도 그리셨고, 대본소 성인만화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셨습니다. 청소년들이 잘 보지 않아서 그렇지.
    진짜 사나이 2부는 저도 초반에 조금 보다 '이건 아닌데..' 하며 덮은 기억이 있네요.;;
    하지만 미들맨은 괜찮았단.
    대본소로 넘어가면서 만화를 대량생산 하게 되어서 작가 본인이 직접 그리기 보다는 어시들이 상당량을 소화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림체가 어색해졌을 겁니다. 대본소로 넘어간 작가분들이 대부분 그렇죠.;
    스포츠신문에 연재하던 '딱 한잔만' 이라는 만화는 꽤나 괜찮았습니다.
    군시절에 즐겨 봤었는데, 나와서는 스포츠 신문 자체를 보지 않아서 끊게 되었네요.;;
    만화방 출입도 드물고, 단행본을 살 정도까진 아니라.
  • 페리도트 2010/09/08 17:12 # 답글

    진짜사나이는 참 재밌었는데....
  • TokaNG 2010/09/08 20:30 #

    지금 봐도 나름 재밌습니다.
    좀 오글거리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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