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그저그런일상들

도시속 자연에서는 어쩌다 매미 한번 보고도, 어쩌다 사마귀 한번 보고도 신기해서 와아~ 하고 구경하게 되는데, 역시 시골의 자연에는 각종 곤충들이 아직도 많이들 살아 숨쉰다.

밀림처럼 우거진 수풀을 잘라내기 위해 예초기를 돌리니, 그 거친 굉음과 날카로은 칼날에 깜짝 놀란 메뚜기들이 폴짝폴짝 뛰어오르고, 귀뚜라미가 시끄럽게 울어대고, 방아깨비가 날아오르고, 사마귀가 어기적 어기적 기어나온다.
배짱이가 배짱 부리듯이 사람 앞을 가로지르고, 여치가 자신과 같은색의 풀을 찾아 도망간다.

아직도 시골의 산속에는 자연책에서나 볼 수 있을 것만 같던 곤충들이 많기도 하다.

카메라를 챙겨갔더라면 더 많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 텐데..
아니, 카메라를 챙겨갔다 하더라도 한가하게 사진따위 찍을 틈은 거의 없었지만.;; (게다가 얘들이 하도 뛰어다녀서 제대로 찍을 수나 있었을지.;;)

잠자리가 날아다니고 나비가 날개짓을 하고 여기저기 바스라진 풀을 밟을 때마다 곳곳에서 비행하듯 뛰어오르는 각종 곤충들을 보니, 새삼 반갑기도 하더라.

편히 쉬고있는 산속에 웬 사람들이 찾아와서 무서운 예초기를 돌려대니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을까.
도망치는 곤충들을 보며 이들의 이런 사정을 스크린에 담아봐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D 애니메이션으로 벅스라이프니, 개미니 하는 영화들이 있지만, 아무래도 서양에는 벌초라는 문화가 없으니 이런 모습을 그려내긴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고. 벅스라이프는 말 그대로 곤충들간의 사정을 그린 영화였지?;;

아, 인간들의 벌초행위에 놀라 쫓기는 곤충들의 모습은 차라리 '애들이 6mm로 줄었어요' 라는 영화에서, 작아진 아이들이 마당에 나갔다가 잔디깎는 기계에 쫓기고, 스프링 쿨러의 공격을 받는 모습과 비슷하겠다. 개미를 타고다니며 마당을 누비는 모습이 참 많이도 신기하고 부러웠는데..




오랜만에 만난 곤충들을 보며 주변을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는 것이, 어릴 때부터 곤충과 함께 자라온 시골소년의 모습이 아니라, 흡사 시골에 곤충 구경온 도시촌놈의 모습이다.
한손엔 낫을 하나 들고 풀을 베기 보다는 여기저기서 마구 쏟아져나오는 곤충떼에 입을 쩍 하고 벌리며 우와~ 하고 감탄만 하고 서있다.
사마귀가 그렇게나 흔한 곤충이었는지는, 이날 처음 알았다.;;

안타깝게도 우리들의 거친 발걸음에, 낫질에, 예초기에 희생당한 곤충들이 없진 않을 것 같다.
최대한 조심스레 피해보려 해도, 너무 많아서 발 디딜 틈도 없으니 그냥 운에 맡기는 수 밖에.
잘려나간 수풀더미를 한데 모아 버리려고 집어드니, 거기서도 배짱이 한마리가 빼꼼 고개를 내민다.
휙 하고 던진다고 죽진 않겠지.




그렇게 풀을 베는둥 마는둥 곤충들만 바라보며 벌초를 하고나니 수풀에 가려졌던 봉분들이 드러났다.
비석도 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거진 수풀을 걷어내니, 저렇게나 많은 선조들이 잠들어 있는데..

그래도 아직 총 4단의 묘자리중 최상단인 4단과 3단밖에 정리를 못해서, 바로밑에는 묘자리인지도 의심스러울 정도로 수풀이 우거져있다.
그냥 숲처럼 보이지만 저기도 풀을 걷어내면 분명 묘자리인데..[...]

그래도 해가 뉘엇뉘엇 넘어가니 이걸로 마쳐야지. 

벌초를 마치고 제단에 간소한 과일들을 올려 인사를 하고 왔다.
저 제단도 원래는 보이지 않았을 터인데, 전날 큰아버지께서 미리 수풀을 걷어내셨더라.



자연이 아직 죽지 않아 다행이다.
회색빛의 도심속에만 머물다 보니, 이제는 곤충들도 다 사라졌을 것 같고, 우거진 수풀들도 별거 아닐 줄 알았는데, 자연은 강하더라.
그렇게 사람들이 짓밟고 깎아내도 끈덕지게 살아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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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깡이 窮狀 茶飯事♠ : 살아있는 것들이 무섭다. 2012-01-30 00:55:27 #

    ... 어하거나 무서워 하는 편은 아닌데도.. 어릴 땐 맨손으로 잠자리도, 메뚜기도 곧잘 잡고, 작은 동물들도 품에 안고 잘 놀았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작은 생명체를 손에 잡는 것이 무서워졌다.벌초를 갔을 때에도 정말 오랜만에 눈에 띈 갖가지 곤충들이 반가웠지만, 어릴 때라면 맨손으로도 덥썩 덥썩 잡았을 그놈들을 장갑을 낀 손으로도 차마 잡지 못하겠더라.이제 자주 보기 힘 ... more

덧글

  • 림삼 2010/09/07 00:33 # 답글

    꼬...꼽등이는 없던가요??^^;;

    너무 더웠을텐데 고생많으셨겠어요 ㅠㅠ 수고하셨습니다!
  • TokaNG 2010/09/07 01:57 #

    꼽등이는 아름다운 자연에 어울리지 않아요.;ㅂ;

    저는 별로 한 것도 없이 낫질 조금 하고 예초기로 베어낸 풀들을 모아다 버리기만 했는데, 그래도 옷이 땀으로 흥건해지더군요.;;
    무지 더웠어요.;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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