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 향기와 나와 장진영.. 그냥그런이야기

국화꽃 향기를 처음 접한 것은 군 시절에 무료한 여가를 달래기 위해 내무반에 비치된 책장을 뒤적이면서였다.
힘든 일과를 마치고 지친 몸을 쉬기 위해 내무반에 들어서면 딱히 유흥 거리가 없는 삭막한 곳인지라 가장 쉽사리 눈길이 가는 곳이 책장이었다.
이상하게도 내무반에 비치된 도서중에는 청춘 로맨스물이 많았는데, 이 책도 그저 그런 로맨스물중 하나로 내 손에 쥐어졌다.

김하인이 쓴 두 권짜리 로맨스물..
즐길 거리가 제한적인 군대가 아니었다면 내가 이 책을 집어들 기회가 있었을까..
요즘같이 만화책이 아닌, 다른 소설들을 멀리하는 때엔 더욱이 접하기 어려웠을듯.. 이미 사놓고도 읽지 못한 책들이 쌓여 가니..

하지만 군대 내에선 만화책따위는 허용되지 않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사회에선 접해보지 않았던 이런 류의 책도 읽을 기회가 생겼으니.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그 내용보다도 여주인공의 이름이었다.
미주..
당시에 꽤나 애틋하게 마음속에 품고 있던, 유일하게 지금껏 연락을 이어오는 대학동기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책장을 넘기고 여주인공이 등장함과 동시에 이미 그 여주인공에게 반해버렸다.
그 동기녀석의 수줍은 미소에 한눈에 반해버렸듯이..

그리고 이어지는 가슴 아픈 이야기들..
사실 읽는 동안엔 불필요하게 미사여구가 많은 김하인 특유의 문어체에 미간을 찌푸리기도 했지만 책장을 넘기면 넘길 수록, 그들의 이야기를 머릿속에 그리면 그릴 수록 그 많던 미사여구들로도 부족한 감정들이 북받쳐 올라서 눈시울이 붉어지더라.

내가 소설책따위나 보며 눈시울을 붉히자 '사내녀석이 소설 읽고 우냐'며 놀려대던 선임도 내가 추천해준 그 책을 읽어보곤 내 머리를 툭 치며 나가더니 담배를 태우더라.
그 무뚝뚝한 선임 마저도 눈시울을 붉게 물들였던 내 생에 첫 로맨스 소설, 국화꽃 향기..

그리고 전역을 하고 이듬해인 2003년에 그 가슴 찡한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기에 기대가 가득한 가슴으로 후배와 함께 극장을 찾았다.
 
 
극장에서 본 국화꽃 향기에 비춰진 얼굴들은 다소 고개를갸웃 하게 하는 얼굴들이었다.
무명시절부터 눈여겨 봐오긴 했지만 그 당차고 힘있는 모습에 반했던 장진영..
과연 암에 걸린 병약한 모습을 잘 그려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병에 걸리고도 간병인보다 건강한 모습을 보이는건 아닌지.. 하는 우려가 앞섰다.
그리고 당시에는 아직 낯설기만 한 신인배우였던 박해일.. 이 작품으로 그를 처음 보게 되었다.

캐스팅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지만 극중 주인공들의 이름 또한 개명이 되어서 내가 반했던 미주는 더이상 그려지지 않고 있었다. 다만 민희재라는 낯선 인물이 너무 기운찬 모습을 보이기에 '역시나..' 하고 실망하기에 이르렀는데..

그리 길지 않았던 러닝타임이 끝나고 극장안에 불이 켜지자 처음엔 무슨 멜로나 보냐면서 시큰둥하던 후배가 눈이 빨갛게 충혈되서 내 손을 꼬옥 잡더라.
그제서야 '아~ 나 아닌 다른 사람들 눈에는 충분히 아름다운 영화였구나.. 너무 다른 생각에만 빠져서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한 모양이네.' 하며 아쉬워 했지만..



이후로 무명인 줄만 알았던 장진영이 여러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다들 반기는 기색이길레 괜히 내가 신이 나더라.
'그래, 이 여자의 가치는 나 혼자만 알고 넘어갈 정도로 없지 않았어. 이렇게나 가치 있는 배우였는 것을 그동안 사람들이 모르다가 이제야 알게 되었구나.' 라며 사람들이 장진영의 이름을 거론하게 해준 국화꽃 향기를 다시 보게 되었다.
너무 원작의 이미지에만 사로잡혀 있던 내게는 그리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영상들이 내가 아닌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한송이 국화꽃을 피워 장진영이라는 배우를 각인시켜줬으니..

이후로도 이어진 장진영의 행보는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가운데 이어졌다.
싱글즈라던지, 청연이라던지,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까지..

사람들의 환호속에 다양한 모습들을 뽐내던 장진영의 작품들을 다 챙겨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눈여겨 보던 배우가 드디어 이름을 날리는 모습이 반가워서 맘속으로 화이팅을 외치며 항상 응원하고 있었는데..

방송에서도 종종 모습을 보이던 그가 문득 활동이 뜸해진다 싶었더니 투병중이라는 기사가 뜨더라.
정말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깜짝 놀라게 하더라.
그리고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 졸이며 하루 하루를 보내다가 그나마 호전되었다는 기사들을 접하곤 이제 곧 다시 볼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기나긴 투병생활도 이제 끝이 나나 싶었는데...


이제는 어제가 되어버린 9월 1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투병생활을 끝내게 되었다는 기사를 읽곤 잠시 멍~ 해지더라.
건강한 모습으로 돌라온 것이 아닌, 이제 영영 볼 수 없는 고인이 되었다는 소식에 또 한번 눈시울이 붉어지더라.
바로 얼마전에 최진실 누님이 가셨을 때처럼 그저 멍하니 기사만 계속해서 읽게 되더라.

어느 기사를 읽어봐도 사실은 죽지 않고 다시 호전되었다는 말은 보이지 않더라.
그저 가족들과 마지막을 준비했다는 말만,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끝까지 사랑해줘서 고맙다는, 그리고 오래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되고 있더라.

아아..
이렇게 또 아름다운 배우 하나가 세상을 떠났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영화속 희재만큼 힘들었을까?
그보다 더 힘들었을까??

차마 그 고통을 헤아릴 수 없어 함께 아파하지도 못하고 너무나 갑자기 떠나버린 그를 다시금 떠올려 본다.


처음에 위독하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만 해도 다시 기운차게 일어설 줄 알았다.

그 기사가 이렇게 별세라는 기사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덧글

  • 동사서독 2009/09/02 02:50 # 답글

    영화 <반칙왕>에서 관장님(장항선) 따님으로 나왔었던 씩씩한 모습도 생각납니다.

    처음 암이 발견되었을 때 수술이 힘들 정도로 어려운 상태였다는 얘기도 있죠.
    환자가 희망마저 놓을까봐 소속사에서 기자들에게 입당부를 했다는 얘기도 있구요.
  • TokaNG 2009/09/12 05:02 #

    덕분에 뽐뿌 받아서 반칙왕 DVD 샀습니다.

    처음 발견 당시에 이미 4기였다는 기사도 있더군요.
    여러모로 안타깝습니다.ㅜㅡ
  • 아르메리아 2009/09/02 13:22 # 답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TokaNG 2009/09/12 05:02 #

    ㅜㅡ
  • alice 2009/09/02 17:48 # 답글

    처음에 국화꽃향기를읽으면서 울었고 영화보면서 장진영씨의 연기보면서 펑펑울었는데.... 그사실을 하교후 알고나서 멍해졌...
    삼가 고인의명복을 빕니다..
  • TokaNG 2009/09/12 05:02 #

    ㅜㅡ
  • 건담=드렌져 2009/09/02 18:42 # 삭제 답글

    응? 내무반에 그런게 있었던가요?
    책장을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아서 그런게 있었는줄도 몰랐네요.....;;;
    오래 전 일이기도 하고....

    어쨌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TokaNG 2009/09/12 05:04 #

    내무반에 그 책 말고도 아침인사라던지 초록모자의 미녀.. 였던가? 하는 책들도 재밌었지.
    나야 군생활중엔 독서를 많이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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