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길을 걸어본지 얼마나 되었을까? 그냥그런이야기

선선한 바람이 부는 차가운 거리를..
네온사인이 화려하게 반짝이는 번화가를 빠져나와 저마다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 틈에 섞여서 터벅터벅 나도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무겁지만 가볍다.


밤길을 걷는다는 것은 어찌보면 무서운 일이다.
앞은 점점 어두워지고 차는 이제 뜸해서 쌩쌩 달리고 주위를 둘러봐도 함께 걸어주는 사람 하나 없다.
세상은 갈수록 흉악하고 험한 범죄에 찌들어 밤에는 걷기 보다는 서둘러 차를 타고 안전한 집으로 대피하길 종용하고 있지만..

그래도 밤길을 걷는 것은 즐겁다.
시끌벅적하던 번화가를 빠져나와 사람이 뜸한 길을 걷는 것은..
이따금씩 보이는 밝은 빛을 따라 도시를 모험하듯 걷는 것은 사람들과 있을 때 느끼던 즐거움과는 다름 혼자만의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혼자 뚜벅뚜벅 길을 걸으며 처음 보는 광경들을 목격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여러 생각들을 되뇌이기도 하며 문득 걷다 외로울 때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다정한 목소리에 취해 헤벌레~ 웃기도 한다.

매번 버스를 타고 지나면서는 보지 못했던 생소한 풍경들에 잠시 샛길로 빠지기도 했다가 이내 길을 잃을까 두려워서 후다닥 뒷걸음질 치기도 하고 가로등이 없는 길에선 무서워서 마구 달리기도 했다가 환한 가로등이 즐비하게 서있으면 괜히 고독한척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기도 한다.

밤바람을 걸으면서 느끼다 보면 참으로 시원하고 맑다.
하루종일 텁텁한 도시속의 공기들이 이제는 맑게 정화될 시간..
공기들이 정화되면서 내마음도 함께 정화되는 기분..


부산에 살 때에는 밤길을 걷는 것을 무척이나 즐겼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도 차가 끊기면 무작정 걷고 술을 마시다가 괜히 울적해지면 걷고 뭔가 근심 거리가 있으면 잔념을 떨치려고 걷고 몸이 찌뿌드하면 운동삼아 걷고 시내에 나갔다가 차비까지 모두 써버려 어쩔수 없이 걷고 또 걷고..

부산은 참 좋은 것이 어지간한 번화가에서라도 무작정 걷다 보면 해 뜨기 전엔 집에 꼭 도착한다.
서면에서 해운대까지, 부산대에서 해운대까지, 동래에서 해운대까지, 경성대, 부경대에서 해운대까지..
양정? 광안리? 안락동? 남천동, 남포동 어디서든 무작정 걷다 보면 꼭 해가 뜨기 전엔 따뜻한 집에 도착한다.
송정에서야 껌이고..

밤길을 걷는 것은 집으로 향하는 걸음이 가장 가볍고 즐겁다.
집을 나서서 다른 곳으로 향하는 걸음은 금방 지치고 쉽게 포기하게 된다.
힘들게 걸어서 마침내 도착한 곳이 가장 아늑한 공간이 되지 않을 바에는 걷지 않는 편이 낫다.
먼 길을 걸으면서 지치고 힘들다가도 '조금만 더 가면 따뜻하고 편안한 집이다!' 라는 생각이 들면 이내 걸음은 다시 가벼워진다.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신나게 폴짝폴짝 뛰기도 하며 괜히 씨익 웃게 된다.
그렇게 몇 시간을 걸어서 집에 도착하면 씻을 기력도 없이 퍼져버리기도 하지만 뭐 어떤가? 집에는 무사히 들어왔고 깨끗한 공기 마시며 무식하게 걸으면서 운동도 되었는데..


이곳 일산에선 걷기가 어렵다.
친구들과 논다면 서울에서 놀 텐데 서울에서 이곳 일산까지는 해 뜨기 전에 닿을 거리가 아니다.
일산에서 논다면 안타깝게도 번화가까지 걸어서 30분 내외다.
겨우 그거 걷는다고 상쾌하지 않다. 게다가 번화가에서 이곳 오피스텔까지 들어오는 길목이 죄다 휘양찬란해서 혼자 걷는 즐거움이 없다.

바로 옆에 호수공원이 있긴 하지.
그런데 역시 이 밤에 집을 나서서 다른 곳으로 향한다는 것은 금방 지치고 쉽게 포기하게 된다.
목적지가 집이 아닐 바에야 걷지 않는 편이 낫다. 괜히 어줍잖게 걸음을 뗐다가 괜히 피곤함에 찌들기만 하고 전혀 보람을 느끼지 못할 것 같다.
호수공원 입구에 채 다다르기도 전에 귀찮아서 발걸음을 다시 돌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호수공원은 걷고 또 걸어도 그 풍경이 전혀 변하지 않아서 재미가 없거든.

집을 나서서 호수공원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은 더욱 귀찮은 일이다.
길을 헤메게 될지도 모르고 역시나 집을 찾아가는 것이 아닌, 불특정의 어느곳을 향해서 무작정 걷는 것은 쉽게 지치고 짜증이 나기 때문에 느긋하게 즐길 수가 없다.

밤길을 걷는 것을 즐긴다는 것은 참으로 까다롭다.
일단은 집까지 걸어서 해가 뜨기 전에 도착할 수 있는 곳에 내가 나가 있어야 하고 주변 지리를 어느정도는 알고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어야 하며 이윽고 도착한 집에는 폭신폭신한 침대가 있어야 한다. 지친 몸을 편히 뉘어야 할 테니까.


...


어쩌면 호수공원을 걷는 것을 즐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 호수공원 뿐만 아니라 집을 나서서 어디로든 향하는 것이라도 하려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경우엔 역시 다정한 길동무가 있어야지.

이 밤에 길을 나서서 즐겁게 걷기 위해서는 함께 웃어주고 함께 대화하며 함께 고민해줄 친구가 필요하다.
친구와 함께라면 집을 향하는 것이 아닌, 집을 나서는 걸음이라도 즐거울 수 일을 텐데..


잠깐 편의점에 다녀오니 그 짧은 거리도 시원하고 좋더라.
걷기에 아주 좋은 밤이다.

하지만 함께 걸어줄 다정한 친구가 여기엔 없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나는 걷기 적당한 거리에 나가있지도 않고 이 주변의 지리도 잘 모른다.


걷기는 걸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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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건담=드렌져 2009/05/08 02:37 # 삭제 답글

    밤길을 혼자서 걸으시려 하다니....
    그러다 큰일(?) 당하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요즘 세상 흉흉한데.....ㅡ.ㅡ;;; (<- 뭔소리?)
  • TokaNG 2009/05/09 02:14 #

    세상은 얍실(?)해서 밤길을 혼자 걷는 '남자'는 건드리지 않아.
    정말 치사하고 쪼잔하고 더럽지.
  • ecarus 2009/05/08 02:42 # 답글

    주변이라도 조금 걸어보시지 그러세요.
    칠흑같이 어둡지만 않다면, 아시다시피, 밤길을 걷는 것만큼 좋은 건 없다니까요-*
    (..건강상으로는 별로겠지만.iiiOrz)
  • TokaNG 2009/05/09 02:15 #

    그러니까 밤에 '집으로 향하는 걸음'은 즐겁지만 '집을 나서는 걸음'은 힘들다니깐요?? ;ㅅ;
    꽤나 까다롭다능??

    근데 밤공기가 새벽공기보다 깨끗하다고 들었는데..
    아니었던가요??;;;
  • 아이 2009/05/08 03:45 # 답글

    안타까운 현실이군요......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같을 수는 없겠죠...
  • TokaNG 2009/05/09 02:15 #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무릎도 저리니..orz
    예전처럼 몇 시간씩 걷는 것은 역시 무리일지도요..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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